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의 박지원 최고경영자(CEO)가 SM엔터테인먼트의 독립성을 보장했다. 하이브는 SM 대주주 겸 전직 총괄 프로듀서인 이수만씨의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의 기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박 CEO는 SM 아티스트들에 대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과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프로듀싱은 물론, 이씨의 경영 참여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14일 가요계에 따르면 박 CEO는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 하이브 사옥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설명회는 하이브의 SM 인수를 놓고 관련자들의 주장과 언론 보도로만 전해진 사실관계를 박 CEO가 직원들에게 직접 공유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박 CEO가 SM 인수를 공개적으로 말한 건 처음이다.
박 CEO는 방 의장, 민 대표, 한성수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대표, 소성진 쏘스뮤직 대표가 SM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싱할 수 있다는 양사 사내외의 관측에 대해 “저마다 바빠 참여할 수 없다”며 “SM의 레거시(유산)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하이브와 SM을 모두 경험한 프로듀서다. SM에서 앞으로 새롭게 구성될 이사진의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박 CEO는 “SM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 하이브는 이미 멀티레이블 체제를 증명했다”며 “SM은 SM만의 가치를 가졌다. 그 색깔을 계속 지켜가고, 하이브는 SM이 더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이브는 지난 10일 이씨의 지분 14.8%를 주당 12만원에 4228억원을 들여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취득 예정 일자는 다음 달 6일이다. 이씨의 지분율은 18.46%로, 하이브는 이 거래를 완료하면 SM 최대주주가 된다.
하이브는 이와 더불어 SM 소액주주들의 보통주 지분 25%를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하고 있다. 공개매수는 다음달 1일까지 진행된다. 하이브는 이씨의 지분과 공개매수를 통한 소액주주의 몫을 모두 확보하면 SM 지분율을 39.8%로 늘리게 된다. 이 경우 SM에 대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
하이브는 한국 가요계 사상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차트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BTS)을 세계 정상급 그룹으로 육성한 기업이다. BTS,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뉴진스, 르세라핌이 모두 하이브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이다.
SM은 K팝을 세계적 콘텐츠로 성장시킨 원류로 평가된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 NCT, 에스파가 SM을 소속으로 두고 있다. 하이브와 SM 소속 가수‧그룹을 한 울타리에 넣는 것만으로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유례없는 ‘빅딜’로 평가된다. 8조1000억원대인 하이브와 2조7000억원대인 SM의 시가총액만 합산해도 11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SM 내부에선 부정적인 기류도 포착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개설된 SM 라운지에서 하이브와 합병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묻는 투표가 지난 11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SM 현 경영진(이성수·탁영준)과 카카오’ ‘하이브와 이수만’의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선호도를 택하는 방식이다.
지난 13일까지 222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SM 현 경영진과 카카오’는 190표(85.6%), ‘하이브와 이수만’은 33표(14.9%)를 받았다. 득표율에서 현재 경영진을 선호하는 반면, 하이브와 이씨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내 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
K팝의 원류와 같은 기업에서 쌓은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SM 직원들의 글도 이 커뮤니티에서 엿볼 수 있다. SM의 한 직원은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분명히 실적이 나아지고 있다. ‘다시 1등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분을 모두 박탈당했다. 그동안의 전통과 역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이씨에 대한 배신감을 드러낸 다른 SM 직원의 글도 올라왔다.
박 CEO의 설명회는 하이브 직원들을 상대로만 이뤄졌지만, SM 내부에서 높아진 불안을 다독이려는 의도로도 풀이될 수 있다.
SM 주가는 사내외의 여러 논란 속에서도 연일 강세를 타고 있다. 하이브의 공개매수 가격인 12만원에 근접한 주가가 유지됐다. 이날 코스닥시장에서 0.69%(800원) 오른 11만6800원에 마감됐다. 하이브는 같은 날 유가증권시장에서 6.88%(1만3000원) 급등한 20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김철오 권남영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