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기회가 오지 않는다, 일이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연기에 자신이 없었다. 배우를 그만둘 결심을 하고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던 중 캐스팅 소식을 들었다. 한구석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카지노’에서 에이전트 필립을 연기한 이해우는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사람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돌이켰다.
필립은 극 중에서 정팔(이동휘), 상구(홍기준) 등과 함께 주인공 차무식(최민식)의 정킷방(카지노에 임대료와 보증금 등을 지불하고 운영하는 사설 도박장) 운영을 돕는 교포 출신 에이전트다. 필립은 드라마 막바지 고 회장(이혜영)이 카지노에서 딴 거금을 훔쳐 소정(손은서)과 함께 달아나려다 총에 맞아 죽었다. 배신자를 가차없이 응징하는 차무식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강렬한 죽음이었다.
이해우는 “연기에 손놓고 있던 상태여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됐고 ‘최민식 선배님과 연기할 수 있을만큼 내가 준비가 돼 있나’ 하는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흥분 반 걱정 반이었다”며 “예전에 선배님과 연기하고 싶다고 노트에 적어둔 적이 있어서 함께 작업하게 된 사실이 놀라웠다.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편하게 대해주셔서 친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3개월 간의 필리핀 촬영 현장에서 그 많은 것을 배웠다. 연기와 협업의 즐거움을 알게 된 건 무엇보다 큰 수확이다. 이해우는 “최민식 선배님은 연기에 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며 “‘필립 연기를 어떻게 하라’ 보다는 배우로서 어떻게 삶을 대해야 하는지,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어떻게 어우러져야 하는지, 대본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 본질적인 것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셨다. 뭔가에 얽매이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하셨다”고 했다.
오랜만에 찾아 온 작품을 그는 열심히 준비했다. 교포 역할이라 피부를 태우기도 하고, 날렵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몸무게도 10㎏ 정도 감량했다. 이해우는 “어릴 때부터 더운 나라에서 험하게 자라 온 사람을 표현하고자 했고, 한 장면에서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과의 조화를 많이 생각했다”며 “죽음에 다다르는 부분에선 무식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를 내 연기로 보여줘야 했기에 고민스러웠다”고 밝혔다.
해외 촬영을 하며 동료들과 함께 작품을 연구하고 동료애를 쌓은 과정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이해우는 “최민식 선배님은 걸어가는 연기만으로도 서사를 쓰시고, 강윤성 감독은 배우의 표현을 많이 허용해주시는 분이었다”면서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좋은 감독, 좋은 선배를 만나 예전에 가지고 있던 조급함이 조금은 사라졌다”고 털어놨다.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이해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그는 ‘평생 연기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예전엔 연기를 하면서 행복했던 적이 없다. 부담스럽기만 했고, 현장이 즐겁지 않았다”며 “지금은 작품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배우가 좋은 배우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