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극심한 가뭄에 물 난리…10만 여명 큰 불편

입력 2023-02-13 15:24 수정 2023-02-14 05:49

50년 만의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광주의 한 정수장 밸브가 고장 나면서 하루 사이 5만7000t의 금싸라기 물을 허비하고 10만여 명의 시민들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다.

13일 광주시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전날 새벽 3시 30분쯤 광주 남구 행암동 덕남정수장에서 소독·살균을 거쳐 정수한 물을 배수지로 보내는 지름 1.8m 크기의 유출밸브가 갑자기 굳게 닫혔다.

애초 밸브를 원거리 통제하는 통신장치 이상으로 판단한 광주시는 해당 통신사와 함께 이를 복구했는데도 밸브가 열리지 않자 지하 현장에 인원을 투입해 수동으로 열려고 했으나 이마저 소용이 없었다.

이로 인해 배수지로 빠져나가지 못한 많은 양의 물이 몇 시간 동안 폭포수처럼 인근 도로에 흘러내려 한동안 정수장 인근의 차량통행이 제한됐다. 가뭄 속에 물 부족 위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아까운 물이 마구 버려진 셈이다.

시는 유출밸브 수리가 여의치 않자 최후 수단으로 급수중단을 전제로 한 밸브 해체작업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단수 시점으로 정한 12일 오후 1시를 불과 1시간여 앞둔 오전 11시 40분쯤에야 비상 단수조치를 예고하는 문자를 느닷없이 발송해 많은 시민의 불만을 샀다.

시는 유출밸브 기어박스를 강제 분해한 뒤 역방향으로 회전시켜 단수에 들어간 지 5시간여 만인 12일 오후 6시 20분쯤 수리작업을 마쳤다.

고장을 일으킨 유출밸브는 1994년 설치된 설비로 그동안 노화돼 베어링 축이 휘면서 갑자기 닫혀버린 것으로 파악됐다.

유출밸브는 ‘독성물질’ 유입 등 만일의 긴급 상황에 대비한 설비로 정수장에서 배수지로 수돗물이 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다.

‘육안점검’ 대상인 유출밸브는 가동 이후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닫히거나 고장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동안 교체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수압으로 밸브 축이 배가 불룩한 알파벳 ‘I’자 형태로 미세하게 휘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닫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시는 13일 0시를 전후해 정수장에서 배수지를 거쳐 각 가정에 수돗물 공급이 정상 재개될 때까지 광산구와 남구 2만8000여 세대 10만여 명이 단수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했다.

대형 저수조를 보유한 아파트 주민들은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에 비해 단독 주택에서는 물이 끊겨 화장실 사용은 물론 설거지조차 못 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수도꼭지에서 흙탕물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물이 필수적인 식당, 카페, 미용실 등에서는 예약을 취소하거나 영업을 중단하고 손님을 받지 않기도 했다.

시는 배수지로 가지 못하게 된 물이 도로 위에 넘치면서 3만7000t, 송·배수관 이물질 제거작업을 하는 데 2만t 등 5만7000t의 아까운 물을 허비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접수된 민원은 단수 309건, 흐린 물 9건 등 모두 317건에 달했다.

시는 사고 직후 기술진의 점검 결과 단수 없이 수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화된 유출밸브 축이 휘고 이를 떼어내는 데 애를 먹어 안전문자를 뒤늦게 보냈다고 설명했다.

밸브를 수리하는 데 예상 밖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급수중단이 이뤄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는 피해보상심의회를 통해 단수 피해가 발생한 업소 등에 보상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구체적 피해액을 산정하고 단수에 따른 피해 인과성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분쟁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는 광주시민들은 “제한급수 하지 않으려면 당장 20% 절수운동을 하라고 빚쟁이처럼 독촉하더니 정작 정수장 밸브 관리를 제대로 못 해 소중한 물을 길바닥에 쏟아지게 해 낭비하느냐”고 어설픈 물관리 행정을 비판하고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물 절약에 동참해온 시민을 허탈하게 만든 사고가 발생해 안타깝다”며 “피해업소 등에 대해서는 법과 절차에 따라 응당한 보상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