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임에도 퇴직금 꿀꺽…공공기관 절반 ‘나몰라라’

입력 2023-02-12 17:41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공기관 혁신 방안 등을 언급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 공공기관 절반 이상이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비위 등으로 해임된 임원에 대한 퇴직금 지급 제한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해 공공부문 개혁 차원에서 수차례 연봉 규정 개정을 당부했지만 이른바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2일 기획재정부의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350개 공공기관 중 해임 임원의 퇴직금을 삭감하거나 미지급하는 내용의 내부 연봉 규정을 갖춘 기관은 173개(49.4%)에 그쳤다.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를 포함한 절반 이상의 공공기관이 채용 비리나 성추행 등으로 해임된 임원에게 일반 임원과 같은 100%의 퇴직금을 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5월 주요 공직유관단체 155개에 대한 관련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4개 기관만 해임 임원 퇴직금 제한 규정을 두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8월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공공기관에 관련 규정 신설을 권고했다. 그럼에도 절반이 넘는 공공기관들이 새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방안을 따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경우 노조 소속 임원이 많아 노조 차원의 반대가 거센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이 임원들 밥그릇 챙기기에 전념하는 동안 비리를 저지른 일반 직원이 퇴직금을 받아 챙기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금품과 향응을 받아 해임·파면된 한국수력원자력 직원 4명은 총 3억5000만원가량의 퇴직금을 수령했다.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같은 이유로 임직원 31명이 해임됐는데, 이들이 수령한 퇴직금만 25억4000만원에 달했다. 한수원과 한국동서발전 등은 지난해 말 부랴부랴 해임 임원에 한정해 퇴직금 제한 조항을 만들었지만, 일반 직원은 현재도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규정을 소급 적용하기도 어려워 이미 해임된 임원들에게 퇴직급 반납을 요구하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정부는 관료주의 타파와 건전재정 유지를 위해 공공기관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기재부는 이런 차원에서 지난해 12월 온라인 설명회와 지난달 전문가 회의 등을 열고 공공기관을 상대로 퇴직금 규정 개정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기재부는 다음 달 공공기관 전수조사를 벌이는 등 고강도 점검에 나설 계획이지만 퇴직금 제도 개선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추가 권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공공기관들이 스스로 퇴직금 규정을 손질하는 방식으로 투명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 개혁은 방만한 경영 활동 개선을 전제로 하는데, 여기에는 도덕적 해이 타파와 윤리성 강화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며 “공공사회의 경각심을 높이고 비위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퇴직금 제한 방침이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