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둘째 딸 김주애가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창건(건군절) 75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18일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이번까지 약 3개월 동안 다섯 차례 나타났다. 모두 군 관련 행사여서 주목된다.
조선중앙통신은 9일 전날 열린 열병식 개최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 동지께서 사랑하는 자제분과 리설주 녀사와 함께 광장에 도착하시었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김주애는 검은색 모자와 코트를 차려입고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다.
그는 김 위원장과 함께 레드카펫 위를 걸어 행사장에 들어왔다. 둘의 한 걸음 정도 뒤에 리설주 여사가 함께했으며 그 뒤로 간부들이 손뼉을 치며 따르고 있다.
김 위원장과 김주애는 앞서 지난 7일 건군절 기념 연회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를 참관할 당시에도 손을 잡거나 팔짱을 꼈다. 이번 건군절 행사에도 비슷한 장면을 보여준 것이다.
아이들로부터 꽃을 받는 김 위원장을 바라보며 손뼉 치는 김주애의 모습도 공개됐다. 김주애는 이후 리 여사, 간부들과 함께 귀빈석에 앉아 밝은 표정으로 열병식 행사를 관람했다. 이 외에 군을 사열하는 김 위원장과 상당한 거리를 둔 뒤편에서 어머니 리 여사와 함께 서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통신은 보도에서 조용원 조직비서와 리일환·김재룡·전현철 당 중앙위 비서들이 “존경하는 자제분을 모시고 귀빈석이 자리 잡았다”고 언급했다. 전날 보도에서는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존경하는’뿐만 아니라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까지 사용했다.
이른바 ‘백두혈통’ 4세대인 ‘김주애 띄우기’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주애의 높아진 위상은 그를 지칭하는 통신의 표현에서 드러난다. 통신은 지난해 11월 김주애를 최초로 소개하면서 ‘사랑하는 자제분’이라고 칭했다. 이어 두 번째는 ‘존귀하신 자제분’이라고 불렀으며 이달 7일 행사 때는 ‘존경하는’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날 오후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열병식 영상에는 김주애가 최고지도자인 아버지의 얼굴을 스스럼없이 만지는 등 백두혈통의 지위를 과시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노출됐다. 김주애는 장병들이 행진하며 “백두혈통 결사옹위!”라고 반복해 외치는 것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11월 18일 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과 11월 26일 ICBM 개발·발사 공로자와 기념사진 촬영 행사, 지난 7일 건군절 75주년 기념 연회에 이어 이번이 S[ 번째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달 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결과를 보도하며 김 위원장이 김주애와 함께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KN-23을 둘러보는 모습을 공개한 것을 포함하면 다섯 번째다.
김 위원장이 김주애를 모두 군 관련 행사에 동행시킨 것이다. 통일부는 북한이 부쩍 김 위원장의 딸 김주애를 부각하는 것과 관련해 “후계구도는 이른 감이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김정은이 딸을 후계자로 삼았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WP에 “‘김씨 일가가 자랑스러운 혈통이며 그 가문이 통치하는 것만이 옳다’는 얘기를 태어나면서부터 들어온 북한 주민들이 4대째 통치를 수용할 수도 있다”면서도 “북한 가부장 체제가 여성 통치자를 받아들일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