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 잃고 다시 선 자전거 유튜버 “고통은 딸꾹질 같아요”

입력 2023-02-10 00:02 수정 2023-02-10 00:02
자전거 유튜버 박찬종씨가 8일 인천 연수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자전거 유튜버 다리 절단 후 112일, 다시 걷게 되던 날”

지난달 30일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의 제목이다. 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단한 남성이 의족을 착용한 채 걷는 모습을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짧지만 강렬한 감동을 주는 영상은 단번에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영상 속 주인공은 자전거 유튜버 박찬종(33)씨다.

지난 8일 인천 연수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찬종씨는 영상 속 서툰 걸음은 간데없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긴바지의 왼쪽 바짓단만 잘라낸 6부 길이의 바지 아래로 의족이 훤히 보였다. 그는 “지난해 사고 이후 ‘올해 안에 두 발로 걷기’가 목표였는데 설 전에 음력으로 겨우 맞춰 지켰다”며 농담을 건넸다.

자전거 유튜버 박찬종씨가 8일 인천 연수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박찬종씨는 2013년 취미로 사회인 동호회에 들면서 자전거에 빠져들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동호회원들과 라이딩을 하고, 아마추어 경기 중에서도 권위 있다는 ‘마스터즈 사이클 투어’에서 선수 활동도 했다. 기록용으로 시작한 유튜버 채널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정보 공유 영상을 기획·제작해 올렸다. 자전거 유튜버로 입소문이 나던 무렵 예고 없이 사고가 찾아왔다.

지난해 9월 23일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2차로를 주행하던 5t 트럭 운전자가 3차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도로 우측 건물에 진입하다 벌어진 사고였다.
사고 전 박찬종씨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 그는 "2013년부터 꾸준히 취미로 자전거를 타왔다"며 "많이 탈 때는 1년에 1만㎞ 정도를 탔다"고 말했다. 사진 본인 제공

자전거 마니아에게 다리 절단은 일종의 사망선고였다. 박찬종씨는 “처음에는 아내한테 자전거 용품을 모두 버리라고 했다”며 “자전거도 유튜브도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다시 자전거를 찾은 건 SNS에 남긴 ‘병상일기’ 덕분이었다. 그는 “사고 당시 감정과 치료 과정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는데, 사고 소식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나니 좋은 댓글이 정말 많이 달렸다”며 “전부 읽어 보곤 내가 두 발로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는 게 받은 응원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왼쪽부터 박찬종씨의 병상일기 내용와 글 목록 일부.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그는 "보는 사람도 재밌게 웃으면서 풀어나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블로그 캡처

그간 공개된 병상일기는 115개다. 게시물마다 적게는 10개, 많게는 300개의 댓글이 달렸다. 누리꾼 반응도 제각각이다. 응원을 건네는 이도 있지만 비슷한 아픔이 있다고 고백하는 이도 있다.

박찬종씨는 “아버지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돌아가셨다던 분의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일기를 보며 ‘아버지가 사고 당시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생각했다’고 했다”며 “그 댓글에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고서야 답변을 달 수 있었다. 사고 당시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아내를 떠올렸던 기억이 도움이 됐다.

왼쪽부터 박찬종씨 아내와 박씨의 모습. 사고 전에는 부부가 함께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사진 본인 제공

그는 “사고 직후 눈을 감으면 아내 얼굴이 보이고 눈을 뜨면 트럭 바퀴가 보였다. 아내가 사고 소식을 듣고 놀랄 게 가장 걱정됐다”며 “댓글을 남긴 이의 아버지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으리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충격에서 벗어나 추억만 간직한 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달했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아내한테 들은 이야긴데 사고 직후 이송 중 아내와 통화하던 구급대원의 전화를 빌려 ‘나 괜찮으니까 아주대병원으로 천천히 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며 밝게 웃었다.

자전거 유튜버 박찬종씨가 8일 인천 연수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권현구 기자

고통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사랑하는 이들과의 미래를 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의 고통을 ‘딸꾹질’에 비유했다.

그는 “사고 이후 환상통(몸의 한 부위가 물리적으로 없는 상태임에도 느끼는 통증)이 생겼다. 딸꾹질이 날 때 멈춰야지 생각하면 절대 안 끝나는 것처럼 환상통도 통증에 집중하고 있으면 계속된다”며 “고통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 언제 걸을 수 있을까, 결혼식에 걸어서 입장 할 수 있을까, 미래의 일들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오죽하면 수술 마취하기 직전까지 의사에게 ‘5월에 결혼식을 해야 하는 데 걸을 수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했다.

박찬종씨가 지난해 12월 19일 듀애슬론 출전을 위해 장만한 새 자전거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과 함께 "내가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 는 글을 적어 올렸다. 박찬종씨 SNS 캡처

사고 이후 그에겐 새로운 꿈들이 생겼다. 장애인 사이클 국가대표가 되어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과 미팅을 마치고 지방자치단체 장애인 체육회의 연결을 기다리고 있다”며 “지자체 소속의 선수가 되면 오는 5·9·10월 열리는 국내대회에 출전해 성적을 만들어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박찬종씨는 주5일 하루 4시간씩 꼬박 재활치료를 받는다. 장기적으로 장애인 사이클 선수로서의 역량을 만들기 위함이지만 가장 가까운 목표는 신혼여행이다. 아내와는 2021년 11월 혼인신고를 마쳤지만, 코로나19와 사고 등으로 미뤄진 결혼식과 신혼여행이 오는 5월 예정돼 있다. 그는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도보로 여행할 계획”이라며 “2시간 정도는 멈추지 않고 걸어야 하기에 재활을 열심히 받는다”고 했다.

자전거 유튜버 박찬종씨가 8일 인천 연수구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현구 기자

앞으로도 글을 쓰고 영상을 계속 만들어 올릴 계획이다. 지금까지 사고 순간과 치료 과정을 ‘기록’해두는데 국한됐다면, 이제는 달리 보이는 것들을 얘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장애를 얻게 되니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장애인 주차장이 없다는 것도 몰랐다”며 “나의 다리나 마음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데 불편한 것들을 짚고 싶다. 그게 진정 일상으로 돌아가는 ‘재활’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찬종씨는 끝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이 장애에 익숙해지길 바랐다. 그는 “앞으로도 의족을 감추지 않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의족을 쳐다보는 건 자연스럽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는 눈길이 간다”고 했다. 그는 “내가 많이 노출될수록 (다른 이들이) 길 가다가 의족이 눈에 들어오는 일도 있을 거고 주변의 장애인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감히 ‘희망을 품어라’는 식의 조언을 함부로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애인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승연 기자 이지민 인턴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