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압수수색 전 대면심리 추진…檢 “증거인멸 우려”

입력 2023-02-08 18:32

대법원이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검사 등 당사자를 불러 심문할 수 있는 제도를 추진한다. 복잡한 사건의 경우 대면 심문으로 영장 심리가 충실해질 것이라는 게 대법원 설명이지만, 검찰에선 수사기밀 유출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사또 재판’을 21세기에 다시 도입하려는 것”이라는 현직 검사의 비판도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3일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법관에게 검사 등의 심문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동안 압수수색 영장은 서면심리로 발부 여부를 결정해왔는데, 필요할 경우 대면 심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해 실무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법행정자문회의 논의 내용을 토대로 마련됐다. 휴대전화 속 정보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침해할 우려가 커 특별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는 게 2021년 10월 사법행정자문회의 결정이었다. 당시 회의에선 불필요한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억제하기 위해서도 대면 심리 수단을 둬야 한단 얘기가 나왔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2021년 기준 91.3%로 대면 심문이 의무화된 구속영장 발부율(82%)보다 높다.

검찰은 “수사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문제 등을 도입한다는 대법원 규칙 개정에 관해 사전에 어떤 협의나 통지도 없이 언론을 통해 처음 접하게 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범죄 수사의 초기 착수 단계인 압수수색 영장 청구 사실과 내용이 사전에 공개되고, 사건 관계인들에 대한 심문 절차가 진행되면 수사 기밀 유출과 증거 인멸 등으로 밀행성을 해치게 되고 신속하고 엄정한 범죄 대응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압수수색 자체가 수사 초기 증거 확보 등을 위한 절차인데, 사전 심문으로 증거 인멸의 기회를 부여하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검은 또 “70여 년 지속된 압수수색 영장과 관련해 생경한 절차를 도입하려면 국민과 관계 기관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협의와 숙고를 거쳐야 함에도 아무런 사전 의견 수렴이나 협의 없이 규칙 개정 절차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 내부에선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문제가 형사소송법 개정 없이 대법원 규칙 개정으로 도입될 수 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이번 규정이 소추와 재판을 분리한 현행법 체계와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 차호동 검사는 검사 내부망에 글을 올려 “19세기 이후 근대 형사사법 체계에서 이미 극복한 규문주의 체계인, 이른바 ‘사또 재판’을 21세기에 다시 도입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차 검사는 ‘법원이 필요를 인정한 경우에 한해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심문할 수 있다’는 이번 규칙 개정안을 두고 “도대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경찰일까요, 검사일까요, 정보원일까요, 고소원일까요”라며 불명확성을 짚었다.

법원행정처는 이와 관련해 “대면 심리의 대상은 통상 영장을 신청한 경찰 등 수사기관이나 제보자 등이 될 예정이고, 대면 심리 자체가 일부 복잡한 사안에서 제한적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사 밀행성 확보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취지다. 다만 예외적으로 피의자나 변호인도 심문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다음 달 14일까지 이번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접수한 뒤 검토를 거쳐 규칙 개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