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이 지났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삶은 여전히 ‘생존을 위한 투쟁’ 상태에 머물러 있다. 진상규명과 추모를 호소하며 거리로 나선 이들은 “죽음도 불사하겠다”고 외치고 있고, 겨우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도 부정적 여론을 마주할때면 살기 위해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예준(22)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문득문득 참사로 희생당한 가영이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골목에서 인파에 휩쓸리면서 함께 갔던 박가영(21)씨의 손을 놓게 됐다. 그는 골목에서 빠져나온 뒤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박씨를 발견해 심폐소생술을 요청하고 함께 구급차에 올랐지만, 친구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이후 그는 100일이 지나도록 친구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눌려 왔다. 또 참사 희생자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목소리에 이태원 사고 소식과 사람들의 반응을 일부러 피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생존자들이 참사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양상에 트라우마 반응을 보인다고 전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참사 당사자들 상태는 호전됐지만, 사회적 갈등 상황을 보면 다시 움츠러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직접 참사를 겪은 유가족과 생존자에게는 100일이라는 시간이 애도를 제대로 시작조차 못 한 기간일 수 있다”며 “이를 인정하고 2차 가해를 막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지난 4일 예고 없이 서울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경찰 및 서울시와 충돌했다. 서울시는 6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계고서를 유가족 측에 통보했다.
시 관계자는 “조례에 따라 불법 분향소는 시민 불편이 커지기 전에 철거할 수밖에 없다. 별도로 유가족과는 계속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서울시에서 분향소를 철거하려 하면 휘발유를 준비해 놓고 아이들을 따라갈 것”이라며 “철거하러 오는 순간 제2의 참사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는 그동안 지하철 녹사평역 지하 4층에 추모 공간을 만들고, 미국의 ‘그라운드제로’를 본떠 참사 현장 인근에 추모비 등 희생자를 기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제안했다. 유가족 측은 이에 대해 “어둡고 좁은 참사 골목만큼 답답한 지하로 아이들이 가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김용현 강준구 성윤수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