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범들에 의해 일본에서 국내로 반입된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측에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전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박선준)는 1일 서산 부석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유체동산(불상)인도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판결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불상이 왜구의 약탈에 의해 불법으로 반출된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대마도)에 위치한 관음사가 이 불상을 20년간 점유한 만큼 취득시효가 이미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본 사찰측 관계자는 ‘관음사 창설자가 조선에서 수행하다가 불상을 물려받아 일본으로 돌아간 뒤 관음사를 창건해 불상을 봉안했다’라고만 할 뿐, 불상을 적법하게 양수했다는 점은 증명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상당하다”고 했다.
이어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으로 지정된 일본국 민법에 의하면 20년간 평온하고 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면 소유권을 취득한다”며 “일본 관음사가 법인이 된 1953년 1월부터 20년간 불상을 점유하면서 1973년 1월 취득시효가 완성됐다. 불상이 불법으로 반출됐다고 해도 취득시효의 완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이는 우리나라 민법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고려시대인 1330년 서주 부석사가 해당 불상을 제작한 것은 맞지만, 지금의 부석사가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 사찰이라고 인정하긴 어렵다고 봤다. 피고측이 제기한 ‘원고인 서산 부석사와 서주 부석사를 동일한 권리주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극락전 복원 공사 당시 발견된 1938년도 상량문, 불상의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결연문 등에 따르면 1330년경 서주 부석사가 불상을 제작했다는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하지만 서주 부석사의 인적·물적 요소가 동일성과 연속성을 갖고 원고에게까지 유지됐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피고는 문화재 보호를 위한 국제법적 이념, 문화재 환수에 관한 협약 등의 취지를 고려해 불상 반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산부석사금동관세음보살제자리봉안위원회 관계자들은 재판 종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 부석사 주지인 원우스님은 “재판부가 장기간 심사숙고한 것은 알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며 “용기있는 대한민국 판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원고측 법률대리인 김병구 변호사는 “오늘 판결이 나온 가장 큰 이유는 서산 부석사가 서주 부석사와 동일한 사찰인지 여부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며 “지난 7년간 수많은 입증 자료와 증거자료를 제출했다. 이미 제출된 증거만으로도 두 사찰의 동일성이 입증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결문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들어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판부가 우리나라 문화재보호법, 국제 협약 등을 고려해 정부가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는 다소 애매모호한 결론을 냈다”며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가치가 있다’는 원칙 아래 서산 부석사로 불상이 반환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50.5㎝ 무게 38.6㎏인 해당 불상은 고려시대인 1330년쯤 제작돼 부석사에 보관됐다가 고려시대 말기 왜구가 약탈해 간 것으로 추정된다. 1973년 일본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한국인 절도범들에게 도난돼 2012년 국내로 반입,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보관해 왔다.
부석사는 왜구에게 불상을 약탈당한 만큼 원 소유자인 자신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도 “역사·종교적 가치를 고려할 때 불상 점유자는 원고인 부석사에 인도할 의무가 있다”며 불상을 부석사로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