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내린 군사동원령을 피해 한국으로 도피한 러시아인들이 한국 법무부의 거부로 수개월째 인천공항에 발이 묶여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보도했다.
28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현재 인천국제공항에 머무르고 있는 러시아인은 5명으로, 이들 중 3명은 지난해 10월에, 다른 2명은 11월에 한국에 도착했다. 이들은 난민심사를 신청했으나 법무부가 심사 회부를 거부했다. 이후 이들은 지금까지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을 돕는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종찬 변호사는 “이들에게는 하루 한 끼 점심만 제공돼 나머지 식사는 빵과 음료로 때우고 있다”며 “샤워는 할 수 있지만, 손빨래를 해야 하고 출국장과 면세구역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라고 CNN에 전했다. 이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인 데다 이들의 불안정한 상황을 고려할 때 꼭 필요한 정신 건강에 대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난민인권네트워크 등 한국의 인권 단체들은 한국 정부에 이 남성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여 달라며 지난달 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징집 거부는 난민 인정 사유가 아니다”라며 러시아인들의 난민 신청을 심사받을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에 러시아인들은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오는 31일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다.
CNN은 “18~35세 사이의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병역의 의무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징병제는 민감한 문제”라며 “운동선수나 K팝 슈퍼스타도 병역 면제 대상이 아니며, 양심적 병역거부도 2018년 판결 전까지 허용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인천공항에 머무르는 러시아인들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한국의 징병제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9월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내린 이후, 첫 주에만 20만명 이상의 러시아 남성들이 조지아, 카자흐스탄과 인근 유럽연합(EU) 국가로 피신했다. CNN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군사 경험 여부와 상관없이 전과가 없는 60세 이하 남성은 모두 징집 대상이다. 전장에서 전투를 거부하는 군인들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의 지하 시설에 구금되며, 탈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