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 강간죄’ 거둬들인 여가부…야권·여성계 반발

입력 2023-01-27 18:47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양성 평등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가 ‘비동의 강간죄’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후 반나절만에 철회한 데 대해 야권과 여성계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동의 강간죄는 국내뿐 아니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기구에서 한국에 입법을 요구하는 정책”이라며 “법무부는 대통령과 여당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윤석열정부가 그토록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세계적인 추세를 의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비동의 강간죄 개정을 5대 입법 과제 중 하나로 지정하고 당 차원에서 힘을 싣고 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SNS에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가 강간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법무부의 반대와 여가부의 계획 철회는) 여성 인권을 후퇴시키는 만행”이라고 꼬집었다. 박 전 위원장은 “강간죄 구성 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은 상식이자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영국, 독일, 스웨덴, 캐나다를 포함해 여러 나라가 이미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위원장은 전날 비동의 강간죄를 공개적으로 반대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오로지 강자만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치인의 천박한 성인지 수준에 제가 다 부끄럽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서도 “현 정부의 만행을 더 이상 두고 봐서는 안 된다”며 “민주당이 성차별 정당 국민의힘과는 다른 성평등한 정당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이 비동의 강간죄 개정을 당론으로 이끌고 나가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비동의 강간죄 개정을 숙원 의제로 추진해온 여성계도 즉각 반발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등 200여개 여성인권단체 연합체로 구성된 ‘강간죄 개정을위한 연대회의’도 27일 성명서를 내고 “비동의 강간죄는 성폭력을 해소하기 위한 세계적 추세”라며 “비동의 강간죄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도 이날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모두 폭행이나 협박을 수반하지 않아도 성폭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비동의 강간죄의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여가부는 전날 오전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공개된 기본계획에는 ‘폭행·협박’으로 이뤄져 있는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법무부가 개정 계획이 없다며 곧장 반박했다. 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여권 정치인들이 일제히 반발하자 여가부는 같은 날 오후 ‘(비동의 강간죄) 개정 계획은 없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류동환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