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배 출신 사업가에게서 저녁 식사와 골프비를 대접받았다는 이유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은 경찰 고위 간부가 불복해 소송을 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징계가 정당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정상규)는 총경 A씨가 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정직처분 등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A씨가 항소하지 않으면서 정직 1개월 징계는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2020년 2월 퇴직한 선배 경찰관에게 ‘관심 대상’ 조폭 출신 사업가 B씨를 소개받았다. 경찰이 첩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관리 대상’ 조폭과 달리, 관심 대상 조폭은 다시 조직원으로 활동하지는 않는지 경찰이 지켜보는 대상을 뜻한다. B씨는 10대 시절 조직폭력 관련 범죄에 연루됐는데 20여 년이 지난 2021년 초까지 관심 대상 조폭으로 분류됐다.
A씨는 이듬해 4월 서울경찰청 근무 중 B씨 제안에 따라 다른 경찰 동료 2명과 함께 골프모임에 참석했다. A씨가 B씨와 자리를 가진 건 이때가 3번째였다. 4명의 골프장 비용 58만3500원과 저녁 식사비 34만1000원은 모두 B씨가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이 사실을 안 경찰청은 A씨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어겼다고 보고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B씨로부터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취지다. 코로나19 감염 확산기였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불필요한 모임을 취소하도록 했는데 해당 복무 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A씨가 불복해 진행된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에서 정직 기간은 1개월로 줄어들었지만, A씨는 이 처분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사건 당일 B씨가 비용을 한꺼번에 결제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 포함 함께 골프를 친 경찰관 3명이 각각 25만원씩 현금을 모아 총 75만원을 B씨에게 전달했기에 향응을 수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B씨가 관심 대상 조폭이었다는 사실을 몰랐고, 골프모임 한 달 전인 2021년 3월 관심 대상 조폭에서 해제됐기 때문에 자신과 직무 관련성도 없다고 했다.
법원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자기 몫을 현금으로 부담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나 정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특별한 친분관계는 없었다는 B씨가 골프비를 전액 결제하는 상황에서 비용 정산을 위해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남지 않는 현금 전달 방식을 택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B씨는 A씨의 직무관련자가 맞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B씨는 약 20년 전 조직폭력 관련 활동을 해 골프모임 직전까지 경찰 전산망에 관심 대상 조폭으로 등록돼 있었고, 현재 여러 업체의 대표 또는 이사를 겸직하고 있어 추후 사업 관련 고소·고발인 또는 피고소·고발인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는 수사 관련 주요 보직을 맡아왔고, 장래에도 고위직 경찰공무원으로서 각종 수사지휘를 담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사건 제1 징계사유(청탁금지법 위반)는 국민의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를 심각히 저해하고 수사의 공정성·객관성 확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A씨의 의무 위반 정도가 약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