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 기업들과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합작공장 계획 무산 소식이 잇따라 들리고 있다. 하지만 K-배터리 기업들의 표정은 나쁘지만은 않다. 계획 철회가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닌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산업계 분석도 비슷하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구애’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국 배터리 산업이 여러 여건을 고려해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고 말한다.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GM 경영진의 4번째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협상이 합의 없이 종료됐다. 얼티엄셀즈의 4공장 건설 가능성은 미국에서 꾸준히 제기해왔다. 현재 얼티엄셀즈는 1공장 가동을 개시했고, 2·3공장을 짓는 중이다. WSJ는 “LG에너지솔루션이 추가 투자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안정적 배터리 공급을 원하는 GM 측의 (4공장) 요구가 강했던 것은 사실이다. 최근까지 꾸준히 논의해왔다고 한다. 다만 이미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한 LG에너지솔루션이 1~3 공장 협상 때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어 뜸을 들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혼다, 스텔란티스 등과도 합작사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굳이 GM 측에 공급·투자 여력을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산업계에서는 얼티엄셀즈 4공장 백지화가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의 공장 건설 무산과는 결이 다르다고 본다. 중국 CATL은 포드와 미국 버지니아주에 합작공장을 건설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버지니아주의 거절로 파토가 났다. 영국 배터리 스타트업 브리티시볼트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파산 신청을 했다. 브리티시볼트는 영국 북부 노섬벌랜드와 캐나다 퀘벡에 공장을 세울 예정이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근본적 차이는 협상의 주도권”이라며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이미 대규모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향후 투자는 수익성 위주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700조원 수준이었던 한국 배터리 3사의 수주 잔고가 올해 1000조원을 돌파한다고 추산한다. 이 물량은 2030년까지 소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7~8년치 일감이 쌓여 있는 셈이다.
자금 문제 등이 부각됐던 SK온과 포드, 코치 3사의 튀르키예 합작법인 설립 무산에 대해서도 다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수익성이 우수했다면 투자했을 것이라며 튀르키예 투자 취소를 ‘자금 부족’보다 ‘투자 재배분’으로 해석한다.
KB증권은 “고금리에 따른 자금 시장 위축이 이차전지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이차전지 업체들에겐 유리한 상황”이라며 “이차전지 시장이 ‘셀러스 마켓’(판매자 우위)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에 수주 계약은 점점 더 유리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