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간첩 수사’에 野속내 복잡… “오히려 도망칠라”

입력 2023-01-20 07:55 수정 2023-01-20 07:56
지난 18일 오전 국정원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사무실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망치게 만드는 것 아닌가.”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간첩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9일 페이스북에서 한 발언이다.

윤 의원은 이날 “조용히 수사해도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기 마련인 게 간첩 수사인데, 온 동네 시끄럽게 해서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하겠느냐”며 “대한민국에서 간첩 수사의 ABC를 무시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간첩 수사는 보안이 생명이라 수사 중일 때는 국회를 비롯한 어떤 곳에도 보고하지 않는 게 관례다”라며 “그런데 최근에는 매일 언론에 관련 수사 조각이 흘러나온다. 흡사 언론 플레이를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수사를 무마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대공 수사에 대해 청와대가 이래라저래라 한 적이 결코 없다”며 “간첩 수사는 은밀히 숨어 있는 조직을 최대한 파악해서 가장 윗선이 어디인지를 알아내야 하고, 물증도 최대한 확보해야 일망타진이 가능하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그에 앞선 글에서도 “갑자기 대한민국에 간첩이 급격하게 많아진 것인지, 조용히 하던 일을 악용하는 이들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최근 간첩 수사 상황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 글에서 “진짜 간첩은 당연히 잡아야 한다”면서도 “간첩 잡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조심해야 한다. 온 동네방네 소문을 내면 더 깊이 숨어드는 게 간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첩당국이 간첩 잡는 일보다 다른 일이 더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국가정보원의 민주노총 압수수색 규탄 및 윤석열 정권의 진보진영 공안탄압 중단 촉구 시민사회노동종교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말을 보탰다. 김 의장은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철 지난 공안 정국이 다시 소환됐다. 사건의 실체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매년 국정원이 대공수사권 유지 도구로 쓰려는 것은 아닌가”라며 “과거 국가정보원은 무고한 국민을 간첩으로 조작하는 등 ‘막걸리 보안법’ 걱정이 많았는데 과거로 돌아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은 당 차원의 공식 반응은 자제하는 모양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공식 입장 표명은 현재 없다”며 “수사가 진행되는 걸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비판은 모두 민주당 의원 개인 차원이다.

앞서 국정원과 경찰청은 ‘간첩단 의혹’과 관련해 지난 1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다음 날인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압수수색은 대통령의 사주를 받고 국정원이 메가폰을 잡은 한편의 쇼였다”면서 “단 한 명의, 한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책상 하나를 압수수색하는 데 경찰 1000여 명이 동원됐다”고 반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