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최종 수사결과 발표…‘꼬리 자르기’ 비판은 여전

입력 2023-01-13 11:28 수정 2023-01-13 11:48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13일 공개한 이태원 참사 당일 CCTV 화면.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인파가 밀리는 '군중 유체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수본 제공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출범 72일 만에 참사 원인에 대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참사 당일 인파가 몰릴 상황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각 기관들의 사전 대책이 부실했고, 사후 조치도 부적절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게 특수본의 결론이다.

각 기관의 책임을 물어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계자 23명(구속 6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경찰청과 행정안전부 등 상급기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유족들은 결국 ‘꼬리 자르기’ 수사에 그친 게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손제한 특별수사본부장은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경찰·지자체·소방 등 법령상 재난 안전 예방 및 대응 의무가 있는 기관들이 예방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사고 이후에도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상황전파 지연, 구호 조치 지연 등 기관들의 과실이 중첩돼 다수의 인명피해를 초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수본은 참사 당일 인파 운집 상황이 충분히 예상됐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역 주변에는 매년 인파가 몰린 데다가,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지하철역 출입구와 가깝고 도로 폭이 평균 4m 정도여서 특히 취약했다는 게 특수본의 판단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서 3년 만에 ‘노마스크’ 핼러윈 데이를 맞아 평소보다도 인파가 더 폭발적으로 몰린 것으로 봤다.

참사의 직접적인 발생 원인은 ‘군중 유체화 현상’으로 지목됐다. 손 본부장은 “참사 당일 오후 9시부터 ‘군중 유체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며 “오후 10시15분쯤 사고 골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떠밀려 내려오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넘어졌고, 넘어진 사람들 뒤편으로 계속해서 인파가 밀리며 군중 압력에 의해 158명이 질식 등으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참사 당일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오후 8시30분쯤부터 극심한 정체 현상이 벌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일시적으로 정체가 생겼다 풀리기를 반복하면서 통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인파에 밀려 강제로 사고 지점으로 가게 됐다. 파도타기처럼 왔다 갔다 하는 현상이 있었다” “뒤에서 파도처럼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 뒤에서 미는 힘 때문에 공중에 떠서 발이 땅에서 떨어진 상태였다”고 특수본에 진술했다.

다만 경찰청이나 행안부 등 상급기관의 법적 책임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특수본은 행안부나 서울시의 경우 사고 발생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없었다며 참사 발생과의 인과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경찰청도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적이 없고, 법령상 다중운집 행사의 안전관리 사무는 경찰청장의 사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특수본은 출범 당시부터 ‘경찰의 셀프 수사’ ‘꼬리 자르기 수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특수본은 “법리적으로 상급기관의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유족들을 중심으로는 “결국 꼬리 자르기에 그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SNS를 중심으로 제기됐던 ‘고의설’ 등 각종 의혹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특수본 조사 결과 확인됐다. 이른바 ‘각시탈’ ‘토끼 머리띠’ 등이 참사 당일 사고를 유도했다는 의혹들이 있었지만 특수본이 당사자들을 조사한 결과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태원 참사 나흘 뒤인 지난해 11월 2일 출범한 특별수사본부는 지금까지 사건관계자 538명을 조사하고 압수수색을 통해 14만여점을 확보해 분석했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현장 감식을 진행해 사고 장소의 인파 밀집도 등도 확인했다. 국내외 비슷한 사례들을 검토했고, 공학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도 받았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