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용직 노동자인 강모(56·구속 기소)씨는 단 3년여 만에 서울 강서구 화곡동을 비롯한 수도권 빌라 283채를 소유한 ‘1세대 빌라왕’으로 변신했던 인물이다. 자기 돈은 들이지 않았다. 그의 뒤에 있던 공인중개사 등이 이른바 ‘깡통전세’ 수법을 전수해 주고, 임차인도 물색해 주면서 강씨를 번지르한 임대사업자로 치장한 것이다.
12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일명 ‘화곡동 빌라왕’ 김씨 및 사기 혐의로 함께 기소된 공인중개사 조모(54)씨, 김모(47)씨의 공소장을 보면 빌라 사기극은 2015년 4월 조씨의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서 시작됐다. 강씨가 “부동산 임대사업을 하고 싶은데 자금 여유가 없다”고 하자, 조씨와 김씨가 “자본금이 없어도 부동산을 다수 소유할 방법이 있다”며 무자본 갭투자 방식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강서구와 양천구에는 매매가와 전세가가 똑같은 신축 빌라가 많다. 이런 집을 사면 건축주에게 받는 리베이트가 있으니 1채당 150만~2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직접 건물주와 세입자를 모집해 강씨에게 연결해 주기도 했고, 강씨가 빌라 소유권을 넘겨받으면서 종합부동산세를 내지 못하면 자금을 빌려줘서 납부하게 하기도 했다. 배후 역할을 한 것이다.
조씨와 김씨는 계약을 대가로 건축주 등에게 받은 리베이트도 강씨보다 많이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임차인을 모집한 후 실제로는 매매가보다 높은 금액의 임대차 보증금을 받아 이를 건축주 등에게 지급한 뒤 빌라 1채당 500만~1500만원의 리베이트를 챙겼다고 한다. 이중 150만~200만원을 강씨에게 지급하고, 등기 비용 등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두 사람이 같은 비율로 나눠 가졌다. 검찰은 조씨 등이 임대차 계약으로 사실상 금전적 이득을 더 많이 취했다는 점에 비춰 이들이 범행을 주도했다고 봤다.
일당은 2018년 말까지 3년 넘게 같은 수법으로 사기 계약을 이어갔다. 공소장에 적힌 피해자 16명에게 가로챈 금액은 28억6300만원에 이른다. 피해자 중 9명은 그사이 전세 계약을 한 차례 갱신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보증금을 올려달라”며 인상분 500만원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
조씨는 강씨가 재력가인 것처럼 속여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매매가와 전세보증금 차이가 없어 불안해하는 피해자들에게 “(강씨가) 대기업 쪽에 근무하고 있다” “외국에서 사업을 한다” 등의 거짓말로 안심시켰다. 피해자들은 계약을 중개해주는 부동산 관계자들의 맏을 믿었지만, 실제 강씨는 빚을 진 채 일용직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대담해진 강씨는 조씨·김씨에게 배운 수법으로 단독 범행에도 나섰다. 2018년 11월 7명의 임차인에게 12억9200만원의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대위변제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런 사실을 숨긴 채 피해자 2명으로부터 보증금 3억여원을 챙겨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내가 근처에 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다”면서 7~8개의 전세물건내역을 문자메시지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에서 조씨와 김씨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은 최근 강씨를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공인중개사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신중권 법무법인 거산 변호사는 “강씨는 실제로는 빌라왕이 아니라 ‘꼬리’에 불과하다. 진짜 몸통인 공인중개사들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들과 공모한 건축주, 분양대행사까지로 수사를 확대해야 이런 사기 피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