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주인을 속이고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지갑을 가로챈 경우 절도가 아닌 사기죄가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남의 지갑을 가져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절도 혐의를 무죄로, 사기 혐의를 유죄로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5월 한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다른 손님 B씨가 이곳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가게 주인은 B씨의 지갑을 주운 뒤 근처에 있던 A씨에게 “이 지갑이 선생님 지갑이 맞습니까”라고 물었는데, A씨는 “제 것이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A씨는 그대로 지갑을 들고 가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1심과 2심은 똑같이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유죄의 근거가 된 죄목은 달랐다. 1심은 A씨에게 절도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절도죄가 아니라 사기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은 A씨의 행동이 ‘절취’(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가는 것)가 아닌 ‘편취’(남의 물건을 속여서 가져가는 것)라고 봤다. B씨가 두고 온 지갑은 가게 주인이 점유한 상태가 되는데 이번 사건에서 A씨는 자신을 지갑 소유자로 착각한 이 주인을 이용해 지갑을 취득했다고 본 것이다. A씨 범행의 본질은 가게 주인을 속인 사기행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지갑을 습득한 가게 주인은 진정한 소유자에게 돌려줘야 할 지위에 있었으므로 피해자를 위해 이를 처분할 권능을 갖거나 그 지위에 있었다”며 “이 주인은 이런 처분 권능과 지위에 기초해 ‘지갑의 소유자’라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지갑을 교부했고, 이를 통해 피고인은 지갑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됐으니 이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