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핸 보육실 비워요”… 인구소멸, 악몽이 현실로

입력 2023-01-10 18:36
경남 합천의 한 어린이집 2층 보육실 모습. 합천=이한형 기자

경남 합천의 한 어린이집 2층 보육실. 15명이 정원인 이곳에 지난 5일 아이들 5명이 남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젓가락질을 배워가며 밥을 먹고 있었다. 합천은 대표적인 소멸우려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올해로 6살이 된 5명의 아이들은 새 학기가 되면 유치원으로 가야 한다. 이들이 지내던 2층은 앞으로 다닐 아이들이 없어 통째로 비우게 된다. 10년 전만 해도 이 곳은 학부모들이 자녀 입소를 위해 줄을 서 대기하던 어린이집이었다.

지난해 이 어린이집은 33명을 보육했다. 정원(74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최근 6~7세 반이 문을 닫았고, 올해 0세 신생아도 입소 예정인원이 단 2명 뿐인 상황이다.


27년 동안 보육교사로 이곳을 지켜온 신숙현(50) 원장은 지역소멸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장 내년부터는 어린이집 문을 계속 열 수 있을지 조차 불투명하다”며 “지역 어린이집 원장 모임에 나가면 모두가 ‘아이가 없다’며 불안해한다”고 토로했다. 폐업 소식도 이어진다. 인근의 A어린이집도 원생을 채우지 못해 다음달 28일부로 폐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합천군은 최근 3년 간 어린이집 대비 영유아 수사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 정원 대비 원아 수는 71.5%였는데, 2021년 68.5% 2022년 67.6%로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야 하는 곳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린이집이 폐업하면서 많은 보육교사들이 실직자가 됐다. 당장 A어린이집 소속 교사 6명이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재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 원장은 “합천 내에서는 새로 개원하는 어린이집이 없어 직장을 잡기 어렵고, 차량으로 40분가량 떨어진 진주시가 그나마 아이들이 있지만 그곳에서도 새로 채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 보육교사들은 언제 어린이집이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어린이집 한 교사는 “농촌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는 노령층을 돌보는 일”이라며 “줄곧 아이만 돌봤는데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 원장은 “내가 돌봤던 아이들이 어른이 돼 다시 우리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길 때 이 일을 하는 보람을 가장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제는 도시로 떠나지 않고 지역에 정착한 청년들마저도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는 경향이 만연하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합천=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