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참사가 11일 1주기를 맞는다. 책임자 처벌을 위한 재판, 시공사 행정처분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가족을 잃은 이들의 고통과 도심 한복판에서 후진국형 인명 참사를 지켜봐야 했던 시민들의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부실시공으로 6명의 근로자가 억울하게 세상을 등져야 했던 참사는 안전불감증에서 유래된 전형적 인재로 규명됐다. 하지만 참사재발 방지와 건설현장의 안전대책 강화 대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한 법안들은 정치권의 소용돌이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6월 철거 중이던 5층짜리 건물이 시내버스를 덮쳐 17명이 사상한 광주 학동 4구역 붕괴사고에 이어 불과 6~7㎞ 떨어진 곳에서 7개월여 만에 또 다른 붕괴참사를 낸 원청업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한 채 솜방망이 처벌만 받게 될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1주기를 계기로 유족들은 전국 건설현장의 비뚤어진 고질적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안전강화 결의하는 1주기 추모식.
1주기 추모식은 희생자가족협의회 주도로 11일 오후 사고현장에서 열린다. 지자체가 주도하는 딱딱한 추모식 대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안전의식의 중요함을 되새기는 추모식을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치른다.
협의회는 이를 위해 1주기 당일 오전 9시부터 사고현장 인근에 분향소를 자체적으로 설치한다. 원하는 시민들은 누구나 헌화·분향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추모식에서는 참사 당시 상황과 구조·수색 활동 모습을 담은 동영상에 이어 헌화와 묵념의 시간을 가진 뒤 각계 인사의 추모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기린다.
협의회는 사고현장뿐 아니라 광주 도심 곳곳에 안전사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건다. 광주시와 서구, 건설사 관계자도 초청해 안전의 의미를 다지는 결의대회를 곁들인다.
담당 지자체인 광주 서구는 9일부터 13일까지를 추모 기간으로 정했다.
1주기 당일에는 5급 이상 공무원과 재난부서 담당자 등이 참석해 안전사고 예방을 다짐하는 결의문 낭독 등 안전의식 다짐 행사를 연다. 재난 안전 역량 강화를 위한 자체 교육도 한다.
서구는 최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대응방안 백서를 발간했다.
◇ 참사현장 3월부터 철거작업 돌입.
지난해 1월 38~23층 바닥과 외벽이 순식간에 붕괴한 201동을 포함한 화정아이파크 전체 8개 동은 이르면 오는 3월부터 전면 철거작업에 들어간다. 내년까지 철거작업을 마무리하고 2027년 입주를 재시공을 매듭짓는다는 계획이다.
시공사인 HDC 현대산업개발(현산)이 광주 서구에 제출한 해체계획서가 심의를 통과하고 국토안전관리원이 안전관리계획서를 승인하면 다이아몬드 재질의 대형 쇠톱 등을 동원하는 철거작업이 본격화된다.
시공사 측은 압쇄와 절단을 혼용해 1개 동을 안전하게 무너뜨리는 데 최소 14일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현산 측은 우선 16일까지 잔재물을 치우는 과정에서 균열이 확인된 25층 바닥 철거 등 벽체와 기둥, 잔해 안정화 작업을 모두 끝내기로 했다.
철거 후 재입주는 2027년 말이 목표다. 애초 지난해 11월 이사를 하려던 입주예정자들은 “쥐꼬리만한 전·월세 지원금을 받았지만 5년 넘게 내 집을 놔두고 떠돌아야 한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 책임자 처벌과 보상, 후속 조치.
참사 직후 29일간의 끈질긴 실종자 수색작업 끝에 잔해 속에 파묻혔던 근로자 6명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11개월여의 끈질긴 수사로 20여 명의 책임자들을 재판에 넘겼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보름 앞두고 참사가 발생해 시공사 대표자 처벌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경찰은 현산 본사 안전부장 등 실질적 권한을 가진 간부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기각해 결과적으로 주요 책임자들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장소장 등 현산 하위직원 3명을 포함한 6명만 구속기소 되고 하도급 업체 대표와 현장감리 등 15명이 불구속기소 되는 데 그쳤다. 법인 4곳은 업무상과실치사와 건축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7달 사이 광주에서만 대형 인명사고를 2건이나 낸 시공사 행정처분도 1년이 되도록 진척이 없다. 국토교통부의 중징계 결정 이후 서울시가 현산 측을 상대로 2차례 청문 절차를 진행했으나 “추가 소명 기회를 달라”는 요청에 따라 뚜렷한 결론은 유보한 채 1심 재판 결과만 지켜보자는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참사를 계기로 건설현장의 안전과 책임자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건설안전법, 건설산업기본법 개정 법안들이 국회와 정부에서 잇따라 발의됐으나 아직 소관 국회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보상 협의기 원만히 진척되지 않은 가운데 1년 가까이 손님이 끊겨 극심한 경영난을 겪는 인근 상인들의 고통도 철거와 재시공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붕괴참사로 2개월 이상 문을 닫은 상가 87곳 중 문구와 화훼상가 등 30여 곳은 피해보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안정호 화정아이파크 희생자가족협의회 대표는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3월부터 이뤄질 철거·재건공사가 부디 차질없이 진행되기 바란다”며 “1주기 추모식이 모두의 안전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