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국내 거래소 고팍스 인수설이 힘을 받고 있다. 예치 상품 출금 중단 사태가 벌어지며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고팍스와 한국 시장 진출을 추진해온 바이낸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암호화폐 업계에선 바이낸스의 진출을 경계하고 있지만 실제로 바이낸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금융당국의 규제 탓에 운신의 폭은 제한될 전망이다.
9일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고팍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출금이 중단됐던 고파이 상품에 대한 6차 공지를 올렸다. 고팍스는 공지에서 “글로벌 최대 블록체인 인프라 업체와의 실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며 이에 따른 유동성 공급 규모는 고파이 원금 및 이자 금액 전체 물량에 대해서 합의됐다”고 밝혔다. 다만 소액주주들과의 협의 및 절차가 다소 지연되고 있어 지급기일 안내가 늦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 유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투자 유치 대상인 ‘글로벌 최대 블록체인 인프라 업체’는 바이낸스로 알려졌다. 바이낸스는 세계 1위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바이낸스의 하루 거래량은 국내 1위 업비트의 10배 이상이다. 고팍스는 인수설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이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한 달 정도 전부터 바이낸스의 인수설이 돌았는데 최근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번 인수설의 배경엔 ‘고파이’ 출금 중단 사태가 있다. 고파이는 고팍스가 제공하는 암호화폐 예치 서비스로 암호화폐 대출업체인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탈이 운용을 맡고 있다. 그러나 상품 협력사인 제네시스 글로벌이 세계 3위 거래소인 FTX의 파산 여파로 대출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파이 서비스의 원금과 이자 출금도 두 달째 막혔다. 고팍스는 고파이 서비스 정상화 목표 기한을 지난 4일로 잡았지만 이를 넘긴 상황이다. 마침 지난 2020년 한국 시장 진출을 도모했다가 실패했던 바이낸스는 원화마켓 거래소인 고팍스를 한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바이낸스의 고팍스 지분 인수는 무리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마련되지 않은 탓에 고팍스는 ‘일반 주식회사’로 분류된다. 지분 매입에 의한 인수를 금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고팍스의 시장 점유율이 낮아 기업 결합 신고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바이낸스가 시장에 입성하더라도 금융당국의 규제 탓에 전면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바이낸스는 재무제표, 자산규모 등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데다 서류상 본사 위치는 조세회피처인 케이맨제도다. 더구나 미국 금융당국과 검찰은 바이낸스 경영진의 돈세탁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고팍스에 실명계좌를 제공한 전북은행은 ‘자금세탁 방지의무’를 함께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만큼 추가 계약조건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시장의 판을 흔들기에도 패가 부족하다. 먼저 고팍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오더북(매매장부) 공유가 여의치 않다. 바이낸스 상장 코인을 고팍스에서 거래하기 위해선 매매장부를 공유해야 하지만 자금세탁 규제를 순조롭게 넘기는 게 선결 과제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다른 가상자산사업자가 국내 또는 해외에서 인가ㆍ허가ㆍ등록ㆍ신고 등을 거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할 경우 ▲가상자산 사업자가 자신의 고객과 거래한 다른 가상자산사업자의 고객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등으로 한정해 오더북 공유를 인·허가하고 있다.
바이낸스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파생상품’도 활용할 수 없다. 자본시장법상 파생상품 시장을 개설하려면 별도의 인가가 필요하다. 현재 암호화폐를 이용한 파생상품이 관련법상 파생상품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