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청와대 시절 힘들었던 순간을 회고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과 딱 한 번 관저에서 식사했던 기억을 언급했다. 수차례 사표를 냈던 탁 전 비서관은 당시 문 전 대통령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식사 내내 침묵하던 문 전 대통령이 “힘들면 나를 봐”라고 한마디 건넨 말에 울컥했다고 전했다.
탁 전 비서관은 지난 6일 저서 ‘미스터 프레지던트’ 출간을 앞두고 메디치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탁현민이 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1825일’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문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기억을 회고했다.
탁 전 비서관은 청와대에서 생활하며 힘들었던 순간을 돌이켜보면서 “사표를 세 번이나 냈다”며 “감당하기 힘들다는 생각은 5년 내내 했다. 임기 초 엄청 힘든 일이 많았고 행사할 때마다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가 있는데 그게 바닥을 찍었을 때가 있었다”며 “대통령님이 개인적인 위로를 하시는 분이 아닌데 딱 한 번 저한테 관저에서 밥을 먹자고 하셨다. 그래서 ‘드디어 나한테 위로를 해주려는구나. 그렇지만 난 사표를 내겠다’고 생각하면서 (관저로) 올라갔다”고 회상했다.
탁 전 비서관은 “밥을 먹는데 (문 전 대통령께서) 한마디를 안 하시는 거다. 밥을 다 먹고 차를 마시는 데도 한마디 안 하셨다”며 “더 앉아 있기도 그래서 ‘이제 내려가 보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래 내려가 봐’라고 하셔서 원래 그런 분이니까(라고 생각) 하고 관저에서 신발 신고 나오려는데 현관 앞으로 오셨다”고 했다.
탁 전 비서관의 마음을 뒤흔든 문 전 대통령의 말은 그다음에 나왔다. 탁 전 비서관이 마지막으로 꾸벅 인사하니 그제야 문 전 대통령은 “많이 힘들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탁 전 비서관은 “그때 울컥했다”면서 “거기서 ‘네 많이 힘듭니다’라고 했더니 대통령이 ‘힘들면 나를 봐’라고 하셨다”며 웃었다.
탁 전 비서관은 “아마 ‘힘들면 내 처지를 봐’ 이런 의미였을 것”이라며 “‘네가 힘들면 나만큼 힘들어?’라는 의미도 있을 거고 ‘나를 생각해서 더 참아줘. 열심히 일해줘’라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라고 문 전 대통령의 말을 해석했다.
퇴임 후 민간인 신분으로 만난 문 전 대통령은 재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며 “기분이 좀 묘했다”고도 말했다. 탁 전 비서관은 지난해 8월 문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제주도에서 한라산 등을 둘러보며 여가를 보낸 적이 있다.
탁 전 비서관은 재임 당시 문 전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한 번도 저를 편하게 해주신 적이 없었다. 대통령을 안 지 12년이 넘었고, 꽤 많은 시간을 같이 일했는데 보통 그 정도 되면 편하게 할 법하지 않나. 그런데 한 번도 저한테 편하게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심지어는 저한테 반말도 잘 안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게 되게 이상했다. 그걸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일을 그만두고 나서 이 책을 쓰면서 알게 됐다”며 “개인적인 인연이 충분히 있지만 청와대에 있을 때만큼은 대통령과 비서관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저는 문재인이란 사람이 가진 태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자기가 높은 지위에 있어도 개인적인 유대감을 강조하려는 게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인데 단둘이 있어도 본인은 대통령이고 나는 의전비서관, 그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오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일화가 아마 문재인이란 한 사람을 보여줄 수 있는 현실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탁 전 비서관은 민간인 신분으로 만난 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약간 당황했다”며 “청와대에서 일할 동안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문 전 대통령이) 뭘 먹고 싶다. 어딜 가고 싶다. 쉬고 싶다’고 한 적이 없었다. 근데 이런 얘기들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좀 낯설었다. ‘이분이 대통령이 아니라 한 시민으로, 한 사람으로, 또 누군가의 아버지로, 선배, 선생님 같은 분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좋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그랬다”고 덧붙였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