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송치된 이기영(31)의 동거녀 시신 수색 작업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동거녀 살인 혐의를 뒷받침할 주요 물증인 시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13일째 수색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수사팀은 시신이 폭우에 의해 유실됐거나 이씨가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기동대와 잠수사 등 경찰 인력 100여명은 8일 오후 단서를 찾지 못한 채 이씨가 시신을 유기했다고 진술한 경기 파주시 공릉천 일대의 수색을 종료했다. 경찰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동 통신기지국 정보를 분석한 뒤 이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매일 수사관 150여명과 잠수사·수색견 등을 동원해 시신 수색 작업을 이어왔다.
현재 굴착기를 동원한 수색 작업은 전날 자로 중단된 상태다. 이미 파볼 만한 곳은 다 파본 상황에서 사람이 굴착기보다 더 깊게 묻을 순 없다는 게 경찰 측 판단이다. 이씨가 시신을 묻었다고 주장한 지난해 8월 8일 이후로 내린 폭우로 인해 시신이 한강으로 유실됐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시신을 땅에 묻었다”는 이씨 진술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거짓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대로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시신 없는 살인사건’ 상태로 재판까지 간다면 이씨의 자백이 있어도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신이 없으면 타살 여부와 사망 시각, 살해 방법 등 구체적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의 자백이 증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보강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경찰은 아직 이씨가 범행에 사용한 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씨는 당초 거주지에서 약 9㎞ 떨어진 경기 파주 공릉천변에 A씨의 시신을 유기했다고 했으나 지난 3일 그로부터 2㎞ 떨어진 다리 근처에 시신을 묻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은 이후 이씨를 대동해 시신을 묻은 장소를 정확하게 대라고 추궁하면서 수색해왔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는 지난 6일 검찰 주도의 현장검증 당시 수갑을 찬 손으로 시신을 매장한 위치를 가리키거나 수사관들에게 삽을 달라고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땅을 파는 수사관에게 답답하다는 듯 “삽을 달라”고 요청하거나 “삽을 반대로 뒤집어서 흙을 파내야 한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들은 이씨와 약 20분간 현장을 둘러본 뒤 떠났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11시쯤 고양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택시와 접촉 사고를 낸 뒤 택시기사인 60대 남성에게 합의금을 주겠다며 파주시 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시신을 옷장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택시기사 살해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범행 넉 달 전인 8월 50대 동거녀까지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씨는 범행 직후 피해자들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실행해 약 7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도 받는다.
경찰은 이씨에게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 유기, 사체 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4일 검찰에 송치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