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브로커, 청산해야 할 적폐

입력 2023-01-08 20:21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는 버려진 아이들을 돈을 받고 파는 브로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이’까지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을 정도로 브로커의 사업 영역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영화였다. 그렇다. 현재는 브로커 전성시대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원래 ‘브로커(Broker)’라는 단어는 포도주통에 구멍을 내어 포도주를 병이나 잔으로 파는 상인을 뜻하는 프랑스어 ‘brocour’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재화를 직접적으로 생산하지 않고 단지 중개만 하는 상인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거래를 알선해주고 커미션을 받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브로커라는 단어는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법조 브로커, 병역 브로커, 승부조작 브로커, 금융 브로커, 장기 밀매 브로커 등…
이 중 법조 브로커는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브로커라 말할 수 있고 현재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법조 브로커 사건으로 유명한 사건은 최유정 변호사 사건을 들 수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최 변호사는 법조 브로커 이동찬을 만나 천당에 올랐으나 곧바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다.

최 변호사는 법조 브로커 이동찬의 소개로 이숨투자자문 송창수 대표의 형사사건을 맡게 되었다. 이숨투자자문 사건은 송창수가 ‘인베스트 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리고 채용공고를 낸 다음, 채용공고를 보고 찾아오는 3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취업하려면 자사에 구좌당 500만원씩 4구좌, 2000만원을 회사의 선물거래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유인해서 1300억원을 떼먹은 사기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3년을 선고받은 송창수는 법조 브로커 이동찬의 소개로 최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임료로 50억원을 지불했다. 이 사건 항소심에서 최 변호사는 정식 선임계를 내지 않는 ‘전화 변론’만 했는데도, 송창수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법조 브로커의 달콤함에 취한 최 변호사는 다시 이동찬의 소개로 정운호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 항소심을 맡았다. 당시 정운호는 100억원대의 상습도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정운호는 ‘보석 또는 집행유예로 석방시켜주겠다’는 최 변호사의 호언장담을 믿고 수임료로 50억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보석신청이 기각되고 설상가상으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아닌 징역 8월의 실형이 선고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최 변호사가 수임료 50억원 중 20억원을 챙기고 30억원만 돌려주자 정운호가 50억원 전부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격분한 최 변호사가 서울구치소로 달려가 정운호를 접견했는데, 이 자리에서 흥분한 정운호의 폭행으로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다. 모욕감을 참을 수 없었던 최 변호사는 지옥의 문을 여는 최악의 선택을 한다. 정운호를 감금폭행치상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법조비리 게이트로 발전했고, 최 변호사와 법조 브로커 이동찬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최종적으로 최 변호사는 징역 5년6월과 추징금 43억여 원을 선고받았고, 법조브로커 이동찬도 징역 8년과 추징금 26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브로커는 특권과 반칙으로 공정과 상식을 파괴하는 적폐 중의 적폐임에도 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오늘도 프로배구 조재성 선수의 병역 면탈을 도운 병역 브로커의 소식이 들린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