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경호 ‘비행금지구역’ 안 뚫렸다던 軍…北 무인기 침입 뒤늦게 시인

입력 2023-01-05 17:55
5일 서울 비행금지구역 'P-73'(빨간색 동심원 2개)의 지정 현황. 각각 용산과 한남동 일대를 기준으로 약 3.7km 반경으로 설정돼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지난달 26일 서울 상공을 침투했던 북한 무인기 중 한 대가 대통령 경호를 위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P-73)까지 침범했던 사실이 5일 뒤늦게 밝혀졌다.

군 당국은 지난달 29일 “적 무인기는 P-73을 침범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말을 뒤집은 것이다.

북한 무인기 사태로 군의 방공 대응체계가 총체적 허점을 노출한 데 이어 군에 대한 대국민 신뢰에도 구멍이 났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P-73’은 대통령의 안전 등을 이유로 항공기의 비행을 금지한 공역이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부근과 한남동 관저 부근 두 지점을 기준으로 반경 3.7㎞ 내로 설정돼 원 2개가 일부 겹쳐진 형태다. 용산구 전체와 종로구·중구·서초구·동작구 일부가 포함된다.

군 당국은 5일 북한 무인기의 P-73 침입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용산 상공은 지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속 100㎞의 북한 무인기가 용산까지 수 분 내 도달 가능한 거리까지 침투한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용산 인근까지 뚫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날 “전비태세검열실에서 정밀 분석한 결과, 서울에 진입한 적 소형 무인기 1대로 추정되는 항적이 P-73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P-73 북쪽을 스치듯 지나간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북한 무인기가 종로구·중구 일대까지 남하해 비행했다는 추정이 제기된다.

군은 북한 무인기의 침범 지점이나 비행거리, 고도 등에 대해선 군사 보안을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경우 북측이 우리 군 탐지자산 등의 위치를 역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은 무인기 영공 침범 사태 이후 작전부대의 초기 보고에 근거해 북한 무인기가 ‘서울 북부’ 지역에서만 비행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러나 레이더 항적을 초 단위로 분석한 결과 서울 중심부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평가를 번복한 배경에 대해 “최초 작전요원들이 레이더로 포착한 미상 항적이 점으로 표시되는 등 탐지·소실을 반복해 무인기로 판단하지 못했다”며 “추후 조사 과정에서 무인기 항적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무인기는 서울 영공 고도 2~3㎞에서 비행한 것으로 추정돼 일각에선 대통령실과 국방부·합참 청사가 있는 용산 일대를 촬영했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합참 관계자는 이에 대해 “거리와 고도, 적들의 능력을 고려할 때 촬영은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며 “촬영했더라도 구글 지도 이상의 유의미한 정보는 얻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고 선을 그었다.

합참 관계자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안전을 위한 거리보다는 바깥이었으며, 집무실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P-73이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설정한 구역인 만큼 침범 사실 자체로 ‘경호 실패’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군 통수권자라면 유례없는 안보 참사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고 책임자의 무능과 기망을 문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기도 한 이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건 국가의 제1의무”라며 “자신의 책무를 완전히 내팽개친 군 당국과 정부에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철저히 따져 묻고 재발방지책을 확실히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우진 이동환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