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경찰에 주는 선물”… 전문가 “경찰 갖고 논다”

입력 2023-01-05 04:47 수정 2023-01-05 09:39
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부경찰서에서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택시기사와 전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시신 유기 장소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며 “경찰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말을 한 데 대해 “자신의 진술에 경찰 수사가 좌우되는 상황을 즐기는 측면이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한마디로 경찰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이기영은 3일 조사 과정에서 지난해 8월 살해한 동거녀 시신을 파주시 공릉천변에 묻었다고 주장했다. 애초 시신을 캠핑용 루프백에 담아 하천에 버렸다고 주장했다가 경찰 수색 개시 1주일 만에 “시신을 땅에 묻었다”고 진술을 바꾼 것이다.

이기영은 이같이 진술하며 “마지막으로 이제 진실을 얘기하겠다” “시신을 찾게 해주겠다” “내가 경찰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발언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강 중심부를 집중 수색하면 시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설명까지 붙였다고 한다.

3일 오후 경기 파주시 공릉천변에서 경찰이 이기영이 살해한 동거녀 시신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곧바로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아직 피해자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진술 이튿날인 4일도 오전부터 굴착기 2대, 잠수사, 수색견 등이 투입됐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4일 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이 같은 이기영의 모습에 대해 “자신의 진술에 경찰 수사가 좌우되고 있는 상황을 즐기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검찰에 송치되기 전 나름의 성의를 표시할 목적에서 땅에 묻었다고 번복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진행자가 이기영의 ‘내가 경찰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발언의 의미를 묻자 곽 교수는 “이 사람의 행동과 말의 특징이 허세다”라며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사건 해결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포장하려는, 굉장히 센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그런 욕망이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도살인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임에도 여러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곽 교수는 연쇄살인범을 쾌락추구형·사회불만형·권력형으로 분류하면서 이기영에 대해서는 “이 세 가지 유형 중에 딱 맞는 건 없다. 사회불만형에 일부 가까운 자포자기형의 범죄자 모습도 보이지만 결국은 금전을 갈취하기 위한 그런 목적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4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부경찰서에서 동거녀와 택시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3일 이기영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강도살인 혐의를 추가했다. 피해자들의 개인정보·휴대전화·신용카드를 이용해 수천만원대 카드론을 받아 돈을 쓴 혐의다. 살인죄의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지지만, 강도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중에서 선고할 수 있다.

이기영은 지난달 20일 밤 자신이 살해한 택시기사와 접촉 사고 당시 전 재산이 62만원밖에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면서도 택시기사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주겠다”며 집으로 유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기영의 통장잔고는 17만원이 있었고, 수중에는 동거녀가 준 반지를 60여만원에 팔고 45만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택시기사의 휴대전화로 대출을 받은 과정을 설명하면서도 이기영이 허위진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기영은 “택시기사가 사망한 뒤, 그의 수첩에서 잠금 패턴을 보고 풀었다”고 말했는데, 택시기사 수첩에는 잠금 패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이 추궁하자 이기영은 “패턴이 그려진 메모는 차를 타고 가다 버려서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강도살인 혐의를 부인하기 위한 거짓말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이기영이 택시기사를 협박해 패턴을 알아낸 뒤, 나중에 자신의 지문으로 휴대전화를 풀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이날 사건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송치하면서 이기영에게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유기, 사체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기영은 이날 롱패딩 차림에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숨겼다. 그는 “살해 행각이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고 했고 ‘추가 피해자는 없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