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실소유주 이정훈 1심 무죄 “피해자 진술 만으론…”

입력 2023-01-03 18:16
1000억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훈 전 빗썸코리아 의장이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시스

1000억원대 규모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의 실소유주 이정훈 전 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재판장 강규태)는 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전 의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에게 빗썸 인수 및 공동경영을 제안하면서 암호화폐인 ‘BXA토큰’을 빗썸에 상장시켜주겠다고 속여 계약금 명목으로 약 1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1120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그는 김 회장에게 인수대금 중 일부를 지급하면 나머지는 암호화폐를 발행·판매해 충당하면 된다고 속인 것으로 조사됐다. BXA토큰은 ‘빗썸코인’이라 불리며 투자자의 관심을 받았지만, 결국 빗썸에 상장되지 않았고 김 회장의 빗썸 인수도 불발됐다. BXA토큰 가격이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구성한 2018년 싱가포르 한 식당에서의 녹음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고인 측과 김 회장 측이 각각 2500만 달러씩 내면 나머지는 투자자 돈으로 빗썸을 인수할 것이라는 내용인데, 김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식사 자리 참여자들은 들은 바 없는 내용이라고 부인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이들이 공동투자합의서를 작성하고, 만나서 대화한 사실도 인정된다”면서도 “직접 증거는 피해자인 김 회장 진술이 유일한 상황에서 그 신빙성에 의문이 있어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만나 해당 발언을 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처럼 정리된 형태로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이 아니며, 일부는 피고인이 직접 한 게 아니라고도 했다.

재판부는 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BXA토큰 상장을 확약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작성한 공동투자합의서에 구속력이 없다고 명시된 점, 합의서 작성 당시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합의서를 상장 확약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봤다. 김 회장이 이 전 의장을 고소하기 전까지 코인 상장 문제와 관련해 항의한 적이 없었던 점도 판단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주식투자 능력, 가상화폐 업계 경력이 상당한 피해자가 피고인의 말만 믿고 BXA토큰 판매대금으로 인수대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착오에 빠질 정도로 지식이나 정보력이 떨어진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