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터질 줄 알았다”… 병역 브로커, 업계 제보로 덜미

입력 2023-01-03 18:05
뉴시스

뇌전증을 위장하는 수법으로 병역 면탈을 도운 브로커들이 행정사 업계의 계속된 제보에 따라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으로 파악됐다. ‘병역의 신’을 자칭했던 주범은 병역 비리를 한창 저지르던 때에도 ‘올해의 행정사’ 수상 경력 등을 내세워 의뢰인들을 유인했다.

3일 검찰에 따르면 브로커 구모씨 등의 병역 면탈 알선 행위를 벼르던 동종 업계 관계자들은 구씨의 상담 녹취록 등 채증 자료를 수집·정리해 수사기관에 넘겼다.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 특별사법경찰관은 지난달 초부터 합동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나섰다. 40대인 구씨는 뇌전증 등을 허위로 꾸며 병역 면탈을 알선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공범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브로커 김모씨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구씨가 처음부터 병역 비리를 통한 돈 벌이 목적으로 행정사 일을 시작했을 것으로 의심한다. 통상 행정사는 의뢰인이 ‘질병이 있는데 병역 생활이 가능할지’ 문의하면 병역법에 근거해 답변을 주지만, 구씨는 “일단 한번 만나보자. 안 되지만 내가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식으로 영업을 했다는 얘기다.

군 전문 행정사들은 “업계에서 구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행정사는 “우리도 언젠가 (구씨 문제가) 터질 걸 알고 있었다”며 “한 의뢰인은 ‘서울에 있는 구씨를 찾아가니까 1000만원을 달라고 하는데 똑같은 군 업무를 하는 당신에게는 얼마나 줘야 하냐’고 물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구씨와 맺은 계약 내용이 문제가 없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행정사는 “의뢰인 중에서는 ‘구씨 사무소의 한 지사에 다녀왔는데 믿음이 안 간다’고 하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었다”며 “그동안 병역 기피 기미가 보이는 사람들을 병무청에 여러 차례 신고하기도 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행정사 업무 자체가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구씨는 영업을 위해 2021년의 ‘올해의 행정사’ 수상 경력도 내세웠다. 그는 당시 행정사 사무소 대표이사 직함으로, 한 소비자단체가 주관하는 우수 전문인 시상식에서 행정사 부문을 수상했다. 구씨가 한 국군포로 유족회 부대표로 있으면서 국방부, 병무청, 국가보훈처 등 기관과 상호 교류 협력했다는 점이 수상 이유였다. 화랑무공훈장 추서, 퇴역식 진행 등 국군포로 유가족들의 권익과 인권보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구씨는 수상 소감에서 “투명하고 정확한 병무 행정으로 병역이행자들이 불이익받지 않고 누구나 공평하게 병역을 이행하게 하는 사회적 병역풍토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구씨가 병역 비리를 저지르고 있던 때였다.

병역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병역면탈합동수사팀은 비리 의혹을 고백한 배구 조재성 선수를 5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신영 성윤수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