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靑 근무”… 가사도우미들까지 등쳐 18억 사기

입력 2023-01-02 15:17 수정 2023-01-02 15:42

사기죄로 징역을 살고 출소한 뒤 서울 서초구 일대에서 재력가 행세를 하며 자신이 고용한 가사도우미 등에게서 18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여성이 1심에서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박설아 판사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53)에게 최근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배상명령을 신청한 피해자 5명에게는 편취한 돈 5억4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A씨는 2015년 사기·무고 등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징역살이를 했다. 2019년 출소한 그는 6개월이나 1년 단위 단기 월세계약을 체결해 서초구 일대 고가 빌라나 아파트에 입주했다. 이후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해당 주택들이 자기 소유인 것처럼 행세하며 피해자 19명에게서 18억300만원을 받아 편취했다.

금융이나 세금 관련 업무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피해자들은 재력가 행세를 한 A씨의 거짓말을 믿었다. 그는 “정부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세금 문제로 신용카드 및 금융 거래 실적이 필요하니 현금·신용카드를 빌려 달라”고 거짓말을 해 현금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빌려 대출을 받은 다음 갚지 않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고용했던 가사도우미 4명도 사기에 당했다. 그는 2021년 5월 가사도우미 B씨에게 “남편이 청와대에서 근무하는데, 진급심사에 걸려있고 가족까지 사찰을 받고 있어 영수증을 처리할 수 없다. 카드를 빌려주면 사용 내역은 한 달 안에 해결해주겠다”며 속여 3813만원을 가로챘다. A씨는 돈을 받거나 신용카드 빌려 대출을 받으면 다른 이에게 빌린 돈을 갚거나 개인 생활자금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을 뿐 이를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그해 9월에도 피해자 C씨에게 접근해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재력가이기 때문에 도움을 주겠다”고 속여 5108만원을 편취했다. 사업상 영수증 처리에 필요한 카드와 현금이 필요하다며 피해자를 속였다. 피해자 중에는 A씨 딸의 과외 선생님과 리듬체조 선생님도 있었다.

박 판사는 “피해자들은 피고인에게 고용된 가사도우미, 보험설계사, 자녀의 학원 선생님, 영업사원 등으로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거액을 편취당해 극심한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고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이 사건과 유사한 사기 범죄로 징역형 집행을 마치고 누범 기간 중 다시 사기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들에 대한 채무 변제를 위해 새로운 사기 범행을 계속 저질러 다수의 피해자들이 발생하게 됐다”고 질타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의류 판매 사업으로 월 30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던 등 범행 당시 상당한 소득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판사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유리한 판단을 받기 위해 사업소득이 있는 것처럼 재무제표를 만들어 소득 신고를 한 것에 불과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