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완장’ 청산 2023년 기대한다

입력 2023-01-01 18:36

‘완장’은 대개 머슴 푼수이거나 기껏 높아 봤자 마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완장은 제가 무슨 하늘 같은 벼슬이나 딴 줄 알고 살판이 나서 신이야 넋이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냥 휘젓고 다니는 데 일단 재미를 붙이고 나면 완장은 대개 뒷전에 숨은 만석꾼의 권세가 원래부터 제 것이었던 양, 바로 만석꾼 본인인 양 얼토당토않은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소설 완장이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에 연재되던 때는 서슬이 퍼렇던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윤흥길 작가는 태생부터 잘못된 권력을 야유할 속셈으로 이 소설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이 소설 완장은 1989년에 TV 드라마로도 방영된 바 있다.

대충의 줄거리는 이렇다. 시골 동네 건달 임종술이 졸부 최 사장의 눈에 들어 큰 저수지 양어장 관리인이라는 완장을 차게 됐다. 그런데, 완장을 차자마자 사람이 180도 변했다. 도둑을 막는 저수지 관리인이라는 본분을 넘어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완장질이 극에 달해 자신을 임명한 양어장 주인조차도 몰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아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완장은 팔에 감는 휘장으로 눈에 쉽게 띄기 때문에 멀리서도 구별할 수 있다. 주로 지시를 받고 집행하는 집행자 또는 실무자들이 차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완장이 때로는 신기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 당시 완장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난폭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완장 찬 조선인은 일제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고 한다. 당시 완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완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마오쩌둥 시대의 ‘홍위병’을 들 수 있다. 당시 중국의 모든 인민은 학생이 교복을 입듯이 강제로 인민복을 입어야 했다. 홍위병은 이 인민복 차림에 마오쩌둥 글씨체로 쓴 ‘홍위병’ 글씨가 들어간 붉은 완장을 찼다. 이들은 마오쩌둥의 권위를 등에 업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들의 패악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도를 넘게 되면서 인민들이 이들의 배후인 마오쩌둥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한 마오쩌둥이 이들을 머나먼 농촌에 수용시키면서 홍위병은 토사구팽됐다.

이처럼 완장은 애먼 사람도 우쭐하게 만들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본인 스스로는 아무런 능력이나 권한도 없으면서 완장을 준 사람 또는 세력을 등에 업고,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권력인 양 패악질을 일삼는다.

그런데, 완장질 하는 사람에게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굉장히 권력지향적이고 자기애가 강하며 이기적이다. 또한, 자신은 타인의 통제를 받기 싫어하면서도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유독 강하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완장 찬 조선인처럼 주인보다 훨씬 매몰차고 야비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완장을 경험했다. 특히 집권세력에 빌붙어서 호가호위하던 완장들로 인한 피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과거의 완장을 제대로 청산하지도 못했는데, 현재 또다시 그럴싸한 옷으로 갈아입은 완장이 나타난 것은 아닌지 위태위태하다. 2023년은 부디 구시대 유물인 완장이 청산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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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