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국민호텔녀’ 악플은 모욕… 대법 “성적 대상화”

입력 2022-12-28 07:10 수정 2022-12-28 10:33

가수 겸 배우 수지(본명 배수지·29)에 대해 ‘국민호텔녀’라는 표현을 쓴 것은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앞서 항소심이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려 무죄를 선고해 이목을 끌었던 사건이다. 대법원은 배씨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비하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욕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44)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5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수지 관련 뉴스에 “언플이 만든 거품. 그냥 국민호텔녀” “영화 폭망 퇴물 수지를 왜 OOO한테 붙임? 제왑(JYP) 언플(언론 플레이) 징하네”라는 댓글을 달아 모욕죄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는 ‘거품’ ‘국민호텔녀’ ‘영화 폭망’ ‘퇴물’ 등의 표현이 수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욕적 단어인지가 쟁점이 됐다.

A씨 측은 “연예기획사의 상업성에 대한 정당한 비판의 표현이자 연예인에 대한 관심 표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이는 모욕적 표현이 담긴 글이라도 사회통념에 비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수준이면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 주장이었다.

1심 “모욕적 언사, 유죄”→ 2심 “표현의 자유, 무죄”
1심은 “‘거품’ ‘국민호텔녀’ ‘영화 폭망’ ‘퇴물’과 같은 표현이 수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모욕적 언사라고 보기에 충분하다”며 2017년 4월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수지가 연예인으로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인 점, 또 인터넷 댓글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이러한 표현들이 건전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연예인 등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에 대한 모욕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는 비연예인에 대한 표현과 언제나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며 2017년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공적 인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예컨대 ‘국민호텔녀’ 표현은 과거 보도된 배씨의 열애설을 기초로 국민여동생이라는 연예업계의 홍보문구를 사용해 비꼰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였다. 그 외 표현도 모욕적 표현이 아니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중의 관심사에 대한 비판과 패러디 등에는 제3자에 대한 모욕적인 내용이 포함될 수 있고, 모욕죄와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공권력이 모호한 기준으로 형사 처벌이라는 수단을 쓸 경우 국민에게 위축 효과를 일으키고 자기검열을 강제하는 해악을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대법 “성적 대상화한 것, 모멸적 표현”
대법원에서 이 사건의 판단은 또 뒤집혔다. 대법원 판단의 초점은 사적 영역에 대한 비하인지, 공적 영역에 대한 비판인지에 맞춰졌다.

대법원은 수지의 사생활과 관련된 ‘국민호텔녀’ 표현에 대해 “수지가 대중에게 호소하던 이미지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암시하면서 수지를 성적 대상화하는 방법으로 비하한 표현”이라며 모욕죄 유죄 취지로 판단했다. 여성 연예인인 배씨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멸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또 국민호텔녀라는 용어가 여성 연예인에 대한 혐오 표현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다만 대법원은 ‘거품’ ‘영화 폭망’ ‘퇴물’과 같은 표현에 대해선 공적 영역에 대한 비판으로 판단,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는 연예기획사의 홍보방식이나 수지가 출연한 영화의 실적 등에 대해 다소 거친 표현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해 형사처벌 대상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