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빵 바구니’에서…난민 선교열전은 이어진다

입력 2022-12-25 00:36 수정 2022-12-25 15:51
앗쌀람선교회 방문팀이 지난 21일 레바논 베카주의 바르 엘리야스 지역의 조이풀교육센터에서 어린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성탄절을 앞둔 지난 23일(현지시간) 오후 레바논 베카 주의 캅 엘리야스 마을에 있는 에반젤리컬 커뮤니티 센터(ECC·담임 김성국 선교사). 시리아 난민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인 ECC 성도들과 김성국(54) 선교사는 교회 앞 200m 앞 난민촌으로 향했다.

9000㎞를 날아온 성탄 선물
이 곳엔 2011년 발생한 시리아 내전으로 피신한 시리아 난민 가정들이 곳곳에 머물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자 접경국인 레바논으로 넘어온 난민들 대부분은 수도 베이루트 동북쪽에 있는 베카 주로 몰려들었다. 120만 명에 달하는 레바논 내 시리아 난민은 레바논 인구(350만명)의 3분의 1수준에 달한다. 대부분 농사를 짓던 이들은 과거 ‘로마의 빵 바구니’로 불리던 곡창지대인 베카 주를 거주지로 삼았고, 7~8년 전부터 ECC를 포함해 많은 교회와 선교사들의 주된 사역 대상이 되고 있다.
레바논 베카주의 ECC 성도들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오후 레바논 캅 엘리야스 마을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에서 성탄 선물로 준비한 음식을 난민 가정에 전달하고 있다.

난민촌 입구에 들어서자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쓰레기와 오물이 널려 있는 깨끗하지 못한 환경이지만, 이 곳에서 태어나거나 이 곳 밖에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난민촌이 마치 최고의 놀이동산처럼 여기는 듯했다. ECC 성도들은 이날 ‘코브즈’로 불리는 빵에다 닭고기와 땅콩을 곁들인 볶음밥인 ‘캅세’, 그리고 샐러드를 담아 포장한 음식을 들고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각 가정마다 전달했다. 음식을 받아든 난민들은 수줍은 듯 하면서도 환한 미소로 고마움을 전했다.

비슷한 시각, ECC 건물 안에서는 난민 출신 어린이들로 꾸려진 주일학교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아랍어로 성탄 캐럴을 합창한 뒤에는 ‘특별한’ 선물 전달 순서도 마련됐다. 서울에서 약 9000㎞를 날아 온 앗쌀람선교회(대표 레이먼드 김 목사) 회원들이 학용품 등 마련한 선물이었다.

2015년 설립된 앗쌀람 선교회는 이슬람권 선교사 및 전문가 배출을 돕는 선교 단체다. 이슬람 바로알기 세미나와 문화탐방 등을 통해 이슬람 이해를 돕는 한편 현지 선교사를 응원·격려·지원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선교회는 올해 성탄절을 앞두고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레바논의 난민 선교 사역지를 방문했다.
한 시리아 난민 소녀가 레바논 베카주 캅 엘리야스 마을의 난민촌 입구에서 아기를 안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몬테소리·태권도 줌 강습도
선교회는 앞서 지난 21일 인근의 바르 엘리야스 지역의 조이풀(Joyful)교육센터(대표 김요한 선교사)에도 들렀다. 난민이 가장 많은 지역 한 가운데 들어선 센터에는 4세에서 11세까지 이르는 난민 어린이 40여명이 다닌다. 독특한 점은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몬테소리 교육 프로그램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인데, 등록을 기다리는 난민 어린이만 20명에 달한다.

NGO인 써빙프렌즈인터네셔널 레바논 지부장인 김요한(51) 선교사는 “난민 어린이들은 또래 아이들보다 발육도 늦은 편이며, 가위질 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를 정도로 교육이 방치돼 있다”면서 “비록 난민의 신분이지만 이들에게도 교육을 통해 희망의 씨앗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앗쌀람선교회 방문팀은 수개월 전부터 준비해간 놀이를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제기차기와 줄넘기, 콩주머니 던지기 같은 놀이를 체험한 아이들은 신기해 하면서도 곧잘 따라했다.

성탄 이브인 24일엔 인근의 또 다른 교육 센터에서 난민 여학생들의 태권도 시범이 펼쳐졌다. 중동의 한 국가에서 태권도 선교를 하는 한국인 선교사 부부가 코로나 기간 줌(Zoom)으로 1년 넘게 가르친 이들이었다. 실내 공간이 좁아 센터 밖 좁은 공간에서 펼쳐진 공연이었지만 분위기는 뜨거웠다. “태권, 태권도” 기합 소리에 난민 부모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연신 스마트폰을 갖다 대기 바빴다. 이들에게 선물을 전한 선교회 팀원들도 뿌듯한 표정이었다.
시리아 난민 소녀들이 24일 레바논 베카주의 한 센터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뜨거운 ‘레바논 선교열전’
현지 선교계에 따르면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는 300명 선이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는 약 3분의 1 수준으로 대부분 베카 지역에서 난민 사역을 펼치고 있다. ECC 담임인 김성국 선교사는 “난민 사역 가운데 주안점을 두는 것 가운데 하나는 매사에 자포자기하려는 난민의식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라며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다.

레이먼드 김 앗쌀람 선교회 대표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쿠르드족을 포함해 시리아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 레바논 현지 선교사들의 다양하면서도 헌신적인 사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이번 방문이 난민들에게 성탄의 기쁨과 감사를 나누고, 현지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의 통로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카(레바논)=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