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사역이란 호흡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역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예배가 막 끝난 시간에 70대 어머니 한 분이 강당 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아들은 화상으로 병원에 들어온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없이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아들이 건강해질 거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죽기 전에 세례라도 받고 그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병상의 아들을 바라보는 그 어머니의 심정을 감히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진 후 홀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정오에 제가 먼저 아들이 있는 중환자실로 들어갔습니다. 중환자 중에서도 더 긴박한 상황에 있는 환자들을 수용한 격리실에 그는 누워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은 현재 검은 숯덩어리 같다”고 했는데 정말 온몸이 돌처럼 차가웠고 피부가 검게 변해 있었습니다. 온몸은 붕대로 감겨 있었고, 그야말로 시체나 다름없었습니다.
세례를 베풀려면 본인의 의사가 중요한데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즉, 신앙고백을 할 수 없어 그날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그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어머니께 세례는 곤란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세례를 꼭 받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이 주님의 마음이라 생각되어 곧바로 세례 준비를 하고 다시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베풀기 위한 기도를 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기도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대신 그의 신앙고백을 이미 받았다.” 그래서 저는 확신을 하고 진심으로 그를 위한 세례를 행했습니다. 세례의식을 행하는데 하늘나라에서 수많은 천사가 이 환우를 둘러싸고 축하해 주는 듯한 은혜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례를 마친 후 어머니께 세례증서를 드렸더니 그 어머니는 진심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연거푸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저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 후로 병원에 갈 때마다 면회 시간에 그 환자를 찾아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면회실 앞에서 명단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먼저였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그동안에 하나님이 데려가신 게 아닌가 하고….
하루 이틀 지나고, 약 열흘 후에 방문했을 땐 격리실에서 나와 다른 환자와 같은 병상에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만큼 좋아졌다는 증거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다음입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향해 제가 환자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몸이 꿈틀하고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제 말에 고개를 움직이며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가 이 병원 목사고 얼마 전 당신에게 세례를 베풀었는데 아세요”라고 했더니 안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환자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나날이 빠른 속도로 쾌차해 세례받은 지 두어 달 만에 일반병실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채로 어머니와 함께 주일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뒤에는 다른 병원으로 갔고 그곳에 있는 동안에도 휠체어를 타고 우리 병원 예배에 종종 참석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병원 사역의 생명이 아닐 수 없고,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일반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으려면 몇 주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가능하지만 병원에서는 그렇게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말씀에 의지해 병원과 환자의 상황에 맞추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세례를 받고 일반병실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고 병실에서 딸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 아버지에게 세례를 행했는데 다음 날 바로 하늘나라로 가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총 153명에게 하나님 나라의 신분증을 전달해 주었으니 이것이 병원 사역의 가장 큰 보람이며 하나님이 저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자가 등록한 교회가 없이 하늘나라에 갈 때 원목이 그 장례식 전체를 주관하여 드리는데 이것 역시 큰 보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생명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천국 문까지 안내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 고백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습니다.(김정자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원목)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