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그리운 바오 목사님

입력 2022-12-21 21:31 수정 2025-07-09 14:31



1) 바오 목사님은 월남의 패망을 눈앞에 두고 위기의 순간에 우리나라를 찾아오셨다. 목사님의 가족과 교회, 교우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이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결단했다는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로서는 하나님께 수없이 고백하였으나 젊고 어린 교인 가족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어찌 묵인할 수 있겠는가. 백방으로 탈출의 길을 모색하는 중 보트피풀의 처참한 상황을 한국 사회와 교회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목사님은 사랑하는 자신의 조국이 공산화로 바뀌는 것을 목도하며 절규했다.

그는 김의환 목사님의 전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총회 신학을 졸업했다. 바오 목사님의 메시지는 온 교인들의 가슴을 쥐어짜는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솔직히 우리는 수많은 국가에 빚진 민족이다. 지난 1950년대 우리나라의 전쟁사를 유추해 볼 때, 우리 민족은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괴롭히거나 침략해 본 일이 없는 선량한 민족이다.

그때마다 우리나라의 피폐한 상황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었던 외세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세계 73%의 국가 67%의 지원국이 우리나라에 참전한 것이다. 700만의 미군이 종군했으며 무려 5만 명의 전사자를 낸 전쟁이었음을 미국 입장에선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 애국가의 가사 그대로 하나님의 보우하심이었다. 세계 곳곳에 준비해두신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해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소름 돋도록 감사한 일이다. 오늘날 세계사에 입지전적인 나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실로 기적이며 꿈같은 일이다.

이 작은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는 나라들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수많은 젊은이를 가난하고 미개한 대한민국에 선교사들을 파송했으며 자신들의 생명을 내맡겨야 하는 한국 전쟁에 동맹국이 되어주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우리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던가.

우린 수많은 나라에 어떤 대가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민족이다. 이미 베트콩들의 만행이 시작된 상태였을 때 그는 쫓기는 몸으로 건물 꼭대기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건너편 건물로 날아오른 기적을 체험하며 죽음의 사선을 넘고 넘어 한국교회를 찾아왔다.

월남의 그 날들은 실로 아비규환 그 자체라고 했다. 아침 밥상에서는 부모와 형제였으나 밤이 되면 적이 되고 원수가 되어 부모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피와 눈물이 없는 이념의 벽, 무덤 같은 사상,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 절벽 같은 절망과 파멸적이고 전염병 같은 유물론 사상의 공산화는 순식간에 베트남을 뒤덮었다. 파리하게 질려서 찾아온 바오 목사님이 한국교회들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왔을 때, 문화촌 산꼭대기에 가난한 동네 동성교회의 담임이셨던 김대복 목사님이 최선을 다해 헌금을 모아 주셨다.

김의환 목사님은 월남전 시점에 월남전에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살려내기 위해 미국에서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전개하신 거룩한 사역자였다. 김의환 목사님이 총회 신학대학 총장으로 부임하셨을 때 베트남 학생들을 전도하여 한국에서 총신대학을 졸업시켰으며 바오 학생을 목사안수를 마친 후에 다시 베트남으로 파송시켰다. 개척 교회 많은 교우의 생명 값을 지불하고 순교자 대열에서 구해내어 조각배를 타고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스위스를 거쳐 미국 시민권자가 되도록 끌어내신 귀한 목사님은 천국으로 이사 가신지 어언 20여 년이 지났다. 지금은 하늘나라 주님 곁에서 참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 참 평안을 누릴 것이다.

목사님이 한국에서 개척교회를 설립하셨을 때다. 목사님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우리 부부의 결혼을 이끌어 주례까지 맡아주셨던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주신 목사님이다. 김의환 목사님의 수제자 바오 목사님은 순교자의 대열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기적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렌지카운티에서 사이공 장로교회를 개척하였다는 것이다. 베트남에 드나들면서 장애우를 거두며 우물을 파주고 교각을 놓아주어 베트남 정부의 신뢰를 얻었으므로 봉쇄되었던 교회를 부활시켜내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공산국가 정부의 신뢰가 쌓여 장로회 신학교 복원을 허락받았다는 것이다.

공산화돼버린 땅에 다시 신학교를 세우고 지도자를 양성시킬 수 있는 허가 요건을 마련했다는 참으로 놀라운 소식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만천하에 알리며 베트콩에 드나들면서 기적 같은 일들을 예수님 이름으로 펼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오 목사는 지금도 미국에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따라 동분서주 일하고 계신다니 참으로 감사하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고난의 날들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다. 바오 목사님의 절규에 함께 울며 최선을 다하신 문화촌 동성교회 목사님과 같은 이 시대의 선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현세에 존재하는 천사들이 아닐까?

2)
유대인 대학살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참혹했던 역사의 한순간이었다. 수십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잔인하고 뼈아픈 어두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겨두고 지나갔다.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또 다른 쉰들러 리스트는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곳곳에 둥지를 틀고 21세기의 세계를 얼룩지게 했다. 역사에 비극을 남겼던 쉰들러의 비서인 라인하르트씨가 떠오른다. 수용소에서 노동자를 골라내어 선별하던 그가 명단을 작성하는 현장에서 한 여성을 목격한 것이다. 한 유대인 여인, 건강하게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찰나에 후다닥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짜내 자신의 얼굴 양 볼에 바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살고 싶었다. 죽음과 같은 처절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살고 싶었다. 본능을 속일 수는 없다. 허약한 자신의 모습이 노동자 대열에서 탈락하는 것이 두려웠다. 어떤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쉰들러의 눈에 적중해서 뽑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 참혹한 현실은 꿈이 아닌 사실이었다. 소름 끼치는 기억이 가끔 나의 뇌리를 스쳐 간다. 쉰들러는 자신의 상의에 금 배지까지 뜯어 한 명의 유대인이라도 더 구하려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그때 바오 목사님에게 적금이라도 해약해서 드렸어야 했는데 헌금 주머니에 겨우 몇만 원 넣었던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기억이 남아 이 시간도 여전히 죄송하다.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는 생존의 갈림길에서 영원한 소망을 갈구하며 죽어 가는 영혼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고 외치던 바오 목사님, 월맹군에 의해 순교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도 참담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참사를 바라보면서도 수차례 바오 목사님을 생각했다. 지금 이 시각 바오 목사님이 살아계심에 대한 글을 다시 쓰게 되어 참으로 벅찬 마음이다. 이 글이 많은 성도에게 진실한 간접 간증이 되길 소망한다. 유물론 사상의 공산주의가 얼마나 잔인하고 패륜 적인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이 어떤 것인지 소리 내 외쳐야 한다.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주님이 돌아봐 주셨을까, 당장이라도 미국에 찾아가 만나 뵙고 싶다.

우리가 헌신할 기회는 우릴 기다려주지 않는다. 때마다 핑곗거리를 찾아 비겁한 변명으로 일축해버리는 우리, 나는 종종 바오 목사님의 모습을 그리곤 했다. 뒤늦게 내게 바오 목사님의 소식을 전해준 박기호 선교사는 청년의 때 함께 신앙생활 하던 주의 신실한 청년이다. 그토록 애절하게 예수님을 사랑하여 자신의 청춘을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헌신했던 분이다. 박기호 선교사님과 우리 부부는 청년의 때 종로 5가 보령약국 뒤 새한교회 담임이시던 김의환 목사님을 모시고 교우시절 같은 교회에서 아름다운 추억 스토리가 가득하다.

20여년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되어 헌신하다 퓰러 신학을 거처 모교의 주임교수와 학장을 지낸 훌륭한 분이다. 그를 통해 놀랍게도 순교자로 이 세상을 떠나신 줄만 알고 있었던 바오 목사님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한국 방문에 내 일터를 찾아준 고마운 박기호 선교사님, 노적처럼 싸인 추억 보따리를 헤치며 지상과 천국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수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하늘나라와 우리 삶을 제 조명해주는 사랑하는 분들의 얘기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바오 목사님이 지금 어엿이 살아 계신다니 꿈같은 현실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순교자의 대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신 목사님을 언젠가는 꼭 만날 것이다. 바오 목사님이 충성을 다함으로 하나님이 악의 축대가 탄탄하던 베트남에 하나님이 천사들을 대동하셔서 대로를 내신 것이다. 우리 부부의 중매와 결혼식의 주례사까지 맡아주셨던 김의환 목사님은 이미 천국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베트남에 바오 목사님의 가족과 신실한 성도들의 생명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성도들에게 외치던 미국과 한국의 쉰들러 리스트였다. 천 번을 되풀이해도 눈시울이 젖어 드는 실화다.

생명 값을 지불하고 수많은 생명을 구해 내셨다는 기적의 간증을 들을 수 있다는 신화 같은 진실이다. 지구촌 도처에 쉰들러의 비서같은 라인하르트씨가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 땅 위의 역사가 저물어 휴거의 때가 도래하고 주님의 재림이 이 땅에 재현되는 그날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다.

은혜받은 일은 대리석에 기록하라는 말대로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재현되는 그날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시작과 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지상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장소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오메가의 때, 그 나라가 임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천국 생명책에 영원히 남겨질 그 이름들, 우리 죄를 속량하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무한하신 그 사랑을 입고 주님 앞에 설 그날을 우리 모두 갈망하자.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이다.


<삼베 홑이불>

들실과 날실로 짜여진
노르스름한 삼베 홑이불
사십 오년을 거슬러 올라
문화촌 산동네 앞에 멈추어 섰다
동성교회 여선교회 선한 자매들
그 얼굴들이 박꽃으로 피어났다
지난여름은 요나를 삼킨
물고기 뱃속처럼 더웠다
시원하게 직조된 삼베홑이불

여름 내내 선선한 추억을 덮었다
삼나무 속에 담긴 시원한 천성
들실 날실의 촘촘한 질서 속에
한반도의 정서가 고여 있다
내 삶의 한고비 또 한고비
삼베 홑이불 만지다
울컥 치미는 그리움
한 땀 한 땀으로 엮인
홑이불속의 가족사랑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