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직원만 숙직, 차별 아니다”… 인권위 결정에 갑론을박

입력 2022-12-20 07:55 수정 2022-12-20 10:54

남성 직원들은 야간 숙직을 하고 여성은 휴일 낮 일직 근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라는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결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의 한 농협IT센터에서 근무 중인 A씨는 지난해 8월 당직근무 편성 때 여성 직원에게는 주말과 휴일 일직을, 남성 직원에게는 야간 숙직을 전담하게 하는 것이 남성에 대한 불리한 대우이고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1년4개월 만인 지난 15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A씨에게 통보했다.

A씨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결정문에 따르면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야간 숙직의 경우 한 차례 순찰을 하지만 나머지 업무는 일직과 비슷하고 대부분 숙직실 내부에서 이뤄지는 내근 업무여서 특별히 더 고된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야근이 휴일 일직보다 6시간 정도 길지만 중간에 5시간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고 4시간의 보상휴가도 주어지기 때문에 현저히 불리한 업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특히 “이런 상황에서 여성에게 일률적으로 야간 숙직 근무를 부과한다면 매우 형식적이고 기계적 평등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들은 폭력 등의 위험 상황에 취약할 수 있고, 여성들이 야간에 갖는 공포와 불안감을 간과할 수 없다”며 “따라서 여성들에게 야간 당직을 배정하려면 여성 당사자들의 입장을 청취해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별 구분 없는 당직근무로 나아가야”
다만 위원회는 “그동안 당직을 남성에게만 배정해 왔던 관행은 직장 내 여성의 수가 적고 열악한 편의시설 등 차별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또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성차별적 인식은 공적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원리로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여성의 직원 수가 늘어나고 보안시설이 발전하는 등 여성의 숙직근무 수행에 어려움이 없다면 성별 구분 없이 당직근무를 편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성평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남성 중 가족돌봄 등 상황에 따라 당직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게 합리적이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위원회는 A씨가 속한 노동조합이 ‘당직제도는 성별 간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당직제도의 폐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점도 짚었다. NH농협 측은 당직제도 변경을 위해서는 사측과 노조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위원회는 “당직근무 방식은 회사의 규모, 소속 직원의 성별과 연령 분포, 당직근무 환경 등에 따라 상이하므로 회사 특성을 반영해 자율적으로 당직 편성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며 “특히 근로자 당사자들 의견을 수렴하는 게 중요하므로 노사가 상호 협의해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진정인 “납득 어렵다”… 서울시, 남녀 다 근무
진정서를 신청했던 A씨는 19일 연합뉴스에 “지난해 8월 진정서를 냈는데 1년4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결론을 정해놓고 짜맞추기를 한 듯한 느낌이 든다”며 “차별시정위원회가 여성 중심이어서 여성 편향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동료 남성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가 이 결정문을 올린 남초 성향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반발이 이어졌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야간당직 등을 여성까지 확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서울시는 2018년 10월 ‘당직·비상근무 규칙’을 개정해 종전에 여성 공무원을 숙직에서 제외하도록 한 조항을 삭제했고, 이듬해부터 본청에서 남녀 모두 숙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서울시는 임신부를 포함해 남녀 불문 만 5세 이하 아동 양육자, 미성년 자녀를 둔 한부모가정 등은 당직근무에서 빠질 수 있도록 기준을 가다듬었다. 서울시는 제도 시행에 앞서 내부 설문조사 등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근무규칙을 바꿨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