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세계 7위를 기록하는 리플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간의 소송전이 2주년을 맞으며 조만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리플의 증권성이 인정될 경우 결과적으로 리플을 포함한 증권형 토큰 발행사들이 불법적으로 자금을 모집해왔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만큼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19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리플과 SEC는 지난 2일 뉴욕남부지방법원에 약식재판(summary judgment)을 신청했다. 약식판결은 서면 증거상으로 한쪽의 승소가 확실시될 경우 본 재판을 열지 않고 판결을 내리는 제도다. 재판부가 약식재판을 받아들여 결정이 날 경우 양측 간의 싸움에 첫 법적 판단이 내려지는 셈이다.
SEC는 리플이 2012년 창사 이후 13억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의 미등록 증권(XRP)을 발행해 이익을 챙겼다는 혐의로 지난 2020년 12월 소송을 냈다. 미국 대법원 판례를 보면 ‘투자 계약’은 ‘기업 등에 자금을 맡김으로써 제3자의 노력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가 충족되는 투자행위’라고 규정돼 있다. SEC는 리플이 코인을 발행해 얻은 수익으로 국제결제망 구축 사업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리플이 증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리플은 투자계약서, 투자의향서 등을 작성하지 않은 만큼 리플을 증권형 토큰(STO)이 아닌 가상자산(Virtual Asset)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플 측은 재판부에 제출한 서류에서 “만약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를 줬다는 이유만으로 증권으로 인정한다면 자동차, 다이아몬드, 완두콩도 증권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업계가 리플과 SEC의 소송전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번 소송이 주요 가상화폐에 대해 증권성 성격을 인정할지의 가늠자가 될 것이란 시각이 크기 때문이다. 시가총액 10위권에 들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코인 발행사 중 주요국 금융당국과 증권성 여부를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건 전 세계를 통틀어 리플이 유일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금융위가 증권형 토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연내 배포하겠다고 밝혔지만 일정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자산과 관련해 글로벌하게 통일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선제적으로 특정 종목에 대한 증권 여부를 결정하기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해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남부지검도 테라·루나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권 전 대표 등에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는데 업계에서는 검찰이 이 점을 입증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보여왔다.
리플이 증권으로 인정될 경우 SEC가 주장하는 리플의 13억달러 규모의 불법 자금모집 혐의도 함께 인정되는 셈이다. 추후 이 같은 조사가 다른 종목으로까지 번져나가면 업계 입장에서는 타격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