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SBS 3기 공채 개그맨으로 정성화는 대중에 처음 얼굴을 알렸다. 시트콤과 드라마에서 단역을 맡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성대모사를 했지만 큰 인기를 끈 건 아니었다. 정성화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뮤지컬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라디오 스타’와 ‘맨 오브 라만차’ 등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그는 2009년 창작 뮤지컬 ‘영웅’ 초연에서 주인공 안중근 역을 맡게 됐다. 이듬해 한국 뮤지컬 대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매 시즌 호평이 이어졌다. 다른 공연 때문에 한 시즌을 쉬면 돌아오라는 팬들의 요청이 빗발쳤다.
영화 ‘영웅’에서도 그는 안중근 역을 맡았다. 원작 뮤지컬을 인상깊게 본 윤제균 감독이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을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성화는 “뮤지컬 원작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라며 “영화 연기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어려워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치열하게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뮤지컬영화를 시도한다는 건 제작자뿐만 아니라 배우에게도 도전이었다. 정성화는 “관객들은 뮤지컬영화를 어색해 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춤추기 시작한다’ ‘대사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가 나온다’ 등의 선입견이 있는데 그걸 반드시 깨야 했다”며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목표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거였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서 하던 노래를 카메라 앞에서 할 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울지 정성화는 고민했다. 그는 “노래를 대사처럼 들리도록 하는 데 신경썼다. 노래에 감정을 충분히 실어야 영화에 빠져있던 관객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다”며 “노래와 연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매 신을 여러 번 촬영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마음을 다잡으며 부르는 ‘십자가 앞에서’는 원테이크로 가는 장면이었는데 일곱 번 정도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다”고 돌이켰다.
13년 간 그는 안중근 의사를 치밀하게 연구했다.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를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집중한 건 투옥되고 나서의 의연한 삶이다. 평소 생활이 어땠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보면 어릴 땐 술도 좋아하고 사냥, 사격도 좋아하셨다. 하지만 나중엔 거의 석학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공부를 했고, 대단한 신자였고, 엄청난 철학가, 계몽사상가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분이 주장한 동양평화 사상은 동양에 있는 나라들이 화폐를 통일하고 서로 대등하게 대하며 군대를 함께 만들어 서양 열강에 맞서자는 내용이었다”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건 그 사람 하나를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구 열강이 우리 상황을 봐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의 목표는 재판이었다”고 말했다.
안중근을 연기하면서 그는 더 겸손해졌다. 정성화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중에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라는 글씨가 있는데 꼭 제게 하시는 말씀같다. ‘스스로 잘난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는 의미”라며 “인생의 목표가 새롭게 설정되고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세울 때, 무대 위에서든 카메라 앞에서든 관객의 의심을 지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믿음을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실제로 의심을 지울 수 있었는가에 따라 내 앞날이 정해진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