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J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어려서부터 ‘영재’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공부에는 영 취미나 관심이 없다. 수업 시간에는 집중을 못 하고 딴짓을 하거나 공상을 해 선생님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며 가르치기 힘든 학생으로 평가했다. 자세한 검사를 해보니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였다.
ADHD를 가진 사람은 J와 같이 영재인 경우가 일반인보다 많다. 뛰어난 과학적인 발명을 하는 과학자, 창의성이 뛰어난 예술가 중에 ADHD를 가진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ADHD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한 가지가 ‘주의력 특성’이다. 우리가 일하거나 공부할 때 뇌 안에서는 일군의 뇌신경 세포들이 ‘불이 켜져’ 함께 작동한다. 이런 뉴런들의 연결 회로가 있는데 기능적 자기 공명 명상을 통해 볼 수 있다. 자기 공명 영상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X선과 비슷한 것으로, 사람이 생각할 때 뇌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런 신경회로 중 공부할 때 켜지는 신경의 회로군을 ‘작업집중 회로’라고 한다. 공부나 일을 오랫동안 멈췄을 때, 뇌 속의 작업집중 회로는 ‘기본상태 회로’로 전환된다. 쉬다가 공부나 일을 시작하면 다시 ‘작업집중 회로’로 전환된다. 쉽게 말하자면 두 회로군 간에 스위치가 있어서 한쪽이 작동할 때 다른 쪽은 휴면 상태에 들어간다. 하지만 ADHD는 뇌에서 두 회로 사이의 스위치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아 공부나 일을 할 때도 두 회로가 함께 작동한다.
쉴 때 활성화되는 기본상태 회로가 켜지면 공상에 잠기거나 여러 개념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사고가 자유로워지므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발명왕 에디슨도 이런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력을 가진 ADHD였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기본상태 회로와 작업집중 회로는 둘 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인데, ADHD에선 공부하면서도 기본상태 회로가 켜져 있으므로 수업 시간에도 공상에 빠져들곤 한다. 기발하고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수업을 방해하니 학교나 직장에 적응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오작동이 때로는 축복처럼 기발한 아이디어, 창의성을 선물로 가져다준다.
평범한 사람들의 뇌에서 기본상태 회로는 작업집중 회로에 쉽사리 끼어들지 않는다. 각 회로의 톱니바퀴가 잘 물려 있어 그럴 틈이 없다. 그래서 성실하게 일하고 공부할 수 있다. 그러나 ADHD를 가진 사람들은 톱니바퀴의 틈이 벌어지면서 공부할 때도, 일할 때도 쉴 때의 신경회로가 같이 작동해 놀라운 상상력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기존 틀을 벗어난 발명품, 경이로운 예술품을 만들어 낸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노래 부르며 여름 내내 놀기만 했던 베짱이의 아이디어로 문명과 예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베짱이가 나태한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아오지 않았던가. 어린이 동화에서도 게으른 베짱이는 결국 응징받는 캐릭터로 취급받는다. 인류에겐 개미도 베짱이도 필요한데 말이다.
이러한 ADHD 특성은 근대의 산물인 ‘학교’라는 집단적 시스템에는 적응하기가 어렵다. 다빈치의 시대도 에디슨의 시대도 아닌 지금, 특히 한국에서는 낙오자가 되기 쉽다. 창의적인 천재성이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학교생활 중 너무 많은 시련을 겪다가 부적응자로 시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안타깝다.
하지만 적절하고 과학적인 치료를 받으면 학창시절도 충분히 잘 적응할 수 있다. 학생들의 다양성을 존중받을 수 있는 학교 문화가 뒷받침된다면 ADHD는 인류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 될 수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