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영하 11도를 기록한 14일 밤.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A(65)씨는 술에 취한 듯 어눌한 발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이어갔다.
A씨는 “한참 사업이 잘 될 때는 교회에서 잘 해 주더니 망하니까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면서 “교회에 섭섭한 마음이 컸는데 서울역에서 노숙하고 보니 우릴 돌보는 건 교회 뿐”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 나왔다. 잊지 않았다는 듯 시편 23편을 또렷하게 외웠다.
이날 A씨는 반찬과 밥 그리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문구가 새겨진 빨간색 박스를 받았다.
5K해피박스라는 이름의 이 상자엔 겨울 양말과 목도리, 간식꺼리, 휴대용 의약품 등이 들어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또 다른 노숙인 B(53)씨는 꽁꽁 언 손으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추위가 걱정돼 ‘지하도로 들어가는 게 어떠냐’는 제안에 B씨는 “오랜만에 캐롤 소리 들으니 기분이 좋다. 지하로 가면 들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선교단체 엔씨앰엔(NCMN·대표 김미진)은 이날 ‘어게인 크리스마스 컬처’를 주제로 300여명의 노숙자들에게 해피박스와 도시락을 전달했다.
NCMN은 이웃사랑 운동을 펼치는 선교단체로 홍성건 목사가 2012년 설립했다. 올해는 12월이면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캐롤송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나눔 행사를 마련했다.
뮤지컬팀 학생과 선생님 등 20여명은 광장에서 빨간색 망토 등을 입고 캐롤을 부르며 성탄절 기쁨을 알렸다. 동시에 NCMN 5K서울지부와 5K서울역팀 등 자원봉사자 50여명은 광장 주변과 서울역 지하도로 이동해 도시락과 해피박스를 전달했다.
5K는 NCMN이 진행하는 캠페인이다. 자신이 거주하는 반경 5㎞ 범위 안에서 이웃 사랑을 펼치자는 운동이다.
NCMN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자원봉사자, 지역 교회와 함께 올 연말은 물론 앞으로도 크리스마스 문화 회복을 위해 ‘5K해피박스’를 이용한 나눔문화에 앞장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