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Q Sign #2] 코로나 19

입력 2022-12-15 13:03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어제도 지금도 영원히.

미국에 있는 큰 시누이로부터 형제초청을 받고 해외개발공사에 다니며 이민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그 결과 미국 이민 비자 거절 통보를 받았다. 재고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냈다. 그를 그 어머니에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분리될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출생하고 성장하고 거주한 아내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한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을 출국하고 미국에 입국해야만 된다는 조건으로 그(우리의)의 이민 비자가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내 입장으로서는 멱살잡이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무튼지 나는 미국에 입국한 그달부터 바느질 공장에 나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바느질 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생존을 위해 일을 했고 자격증 공부를 병행했다.

그렇게 만 35세에 미국에 들어가 만 75세에 결단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 곧 ‘하나님의 Q sign’은 그 모든 과정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증언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코로나19로부터 시작한다.

코로나19에 걸리게 된 경위는 아래와 같다. 2020년 11월 3일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서 미처 몰랐던 많은 사실을 보고 감지했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부로 TV를 끄고 다시는 켜지 않았다. 원래 TV를 즐겨 보던 사람이 아니기도 했지만 ‘거짓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기에.

“과연, 내가 사는 이 세상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알게 됐다. 사실과 진실이야 어떻든, 모종의 유익을 위해 일치단결한 무리가 작정하고 한마음으로 밀고 나가게 된다면 사실이나 진실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민주주의란 원래 다수결의 원칙에 의하여 이런저런 일들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다수결의 법칙은 언제 어느 경우에나 옳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라 좁은 길이요 외로운 투쟁이다.

입맛이 떨어져서 먹는 것이 소홀해지다가 2021년도 1월 20일경부터는 목을 축이는 정도가 됐다. 배는 고픈데 음식은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어떻게 무엇을 먹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됐고 내일이면 생명이 꺼지고 말 것이라는 본능적인 생존 자각이 들었다. 온 힘을 다해 비상 단추를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방대원 6명이 문을 따고 들어왔다. 일어나서 문을 열어 줄 힘도 없었다. 그들은 사이렌을 울리며 마른미역같이 널브러져 있던 나를 병원 응급실로 옮겨 줬다. 환자복으로 갈아 입혀져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눈에 들어온 시계가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2021년 2월 2일이었다. 산소 호스가 코에, 알 수 없는 많은 선이 팔과 가슴과 배에 보태져서 삽시간에 ‘걸리버여행기’의 걸리버처럼 온몸이 포박됐다. 3시간의 응급조치를 마치고 입원실로 향하면서 의료진에게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잠시 잠이 들었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였다. 흰머리를 무릎까지 내려뜨린 백인 할머니 귀신이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예수의 피, 예수의 피, 예수의 피!”를 외쳤다. 그 귀신은 안개같이 사라졌다.

아, 얼마나 많은 의료 인력들이 나 하나를 위해 투입이 됐을지. 그들의 헌신에서 섬세히 보살피시는 하나님 손길이 느껴졌다. 그 무한하신 사랑도 느꼈다. 계속 치료받으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에 들어갔다. 위에서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고밀도의 단비같이 세포 속속들이 임했다. 하나님은 내가 시편 23편 말씀을 묵상하고 고백하고 선포하게 해주셨다.

대충 열흘 정도 굶은 상태에서 코로나19까지 작정하고 덤벼들었으니, 죽음을 피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도 평안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 아멘!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아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는도다. 아멘!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아멘!
내 평생에 선함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멘!

시편 23편 말씀을 묵상하고 고백하고 선포했다. 그리고 지난 2월 4일 밤, 꿈인지 환상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걸 봤다. 검붉은 죽음의 강에 빠진 내 모습이었다. 몸은 그 검붉은 물에 완전히 잠겨 있었다. 산소 호스를 낀 코만 그 죽음의 강물의 위로 아래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강물 위로 화면 가득히 나타나셨다. 육성으로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음성이 마음으로 들려왔다. 지난 2월 5일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매우 깨끗해진 느낌이 들었다. 마음도 몸도 개운했다.

담당 의사가 회진을 와서 여기저기 만져보며 내게 물었다. “How about your feeling(어떠세요)?” 나는 답했다. “I feel so great(아주 좋습니다)!” 신바람이 난 아이처럼 난 그에게 답했다. 간호사가 와서 이것저것 검사해도 모든 게 정상이었다. 열도 두통도 없었고 혈압도 정상이었으며 다리도 부어오르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리면 부어오르는 경우도 있는지, 그들은 꼭 다리가 부었는지 만져보곤 했다.

수혈도 받았지만, 노상 팔에 호스를 끼고 링거를 맞았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소변이 마려운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온몸에 주렁주렁 달린 것을 스스로 다 풀어내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바쁜 간호사들을 번잡스럽게 하기도 미안해서 참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

이현성 인턴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