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 손흥민(30·토트넘 홋스퍼 FC)의 부친 손웅정(60) 손(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여전히 아들은 ‘월드 클래스’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의 단호함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 흥민이 월드클래스(월클) 아닙니다”라는 축구 팬들 사이에서 ‘월클 논란’을 일으켰던 손 감독은 14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유퀴즈)에 출연해 아직도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건 아니다. 여전히 변함없다”고 못을 박았다.
손 감독은 “내 자식이라 보수적으로 보는 것도 있겠지만 나는 흥민이의 축구가 늘 10% 성장하기를 바란다”며 “흥민이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이 됐을 때 흥민이에게 얘기했다. 사람들은 ‘전성기’를 좋아하지만 나는 내려가라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단 아름답게 점진적으로 내려가야 한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면 팬들이 허무하실 수 있잖나”라고 했다.
이어 “축구는 젊어서 잠깐이다. 영원한 건 없다. 도취되면 안 된다”면서 “고향, 지자체에서 ‘흥민이 도로’ 건립도 말씀해주시는데 정중히 거절했다. 은퇴하면 누가 흥민이 이름이나 불러주겠나, 아무도 기억 안 해준다”며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흥민의 축구 스승이기도 한 손 감독도 축구선수 출신이다. 프로로 활동하면서 37경기에서 7골을 넣었다. 한때 국가대표 B팀에 선발되기도 했으나 부상으로 20대 중반에 조기 은퇴했다. 손 감독은 “나는 삼류선수였다. 무늬만 프로였다. 어디 가서 ‘나 축구했어’라고 제 입으로 말해본 적이 없다”고 겸손해 했다.
선수시절 왼발을 잘 쓰기 위해 오른쪽 축구화에 압정까지 꽂고 연습했다는 손 감독은 양발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손흥민이 어릴 때부터 왼발을 잘 쓸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그는 “발 씻을 때도 왼발부터, 양말을 신거나 공을 찰 때도 왼발부터 시켰다. 슈팅 연습을 할 때도 왼발을 1.5배 더 사용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일찍 프로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손 감독은 젊은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막노동판에서 일도 하고, 사글세 살고 하다 흥민이 어렸을 땐 컨테이너에서도 살았다”고 전했다. 다만 “(그럼에도) 2세가 태어나면 ‘운동을 안 시키겠다’ 이런 생각은 없었다. 내가 낳았지만 또 다른 인격체 아니냐”고 했다.
손흥민이 18세 나이에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 입단하며 유럽 프로리그에 진출한 당시 아들에 대한 걱정과 고달팠던 시절도 떠올렸다. 그는 “춥고 배고팠던 생각밖에 안 든다”며 “손흥민의 데뷔 골에도 두려움을 느꼈다. (손흥민이) 도취할까 봐 며칠은 (손흥민이) 망각증에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두려웠다”고 털어놨다.
2022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안와골절 수술을 하고도 마스크를 쓰고 투혼을 발휘한 아들에 대한 속마음도 고백했다. 손 감독은 “부모 마음은 똑같을 거다. 네 군데가 골절이 됐다. 부상을 당할 때 ‘아 저건 골절’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입에서 나온 말은 ‘월드컵은?’이었다. 흥민이도 돌아오자마자 월드컵을 걱정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수술을 최대한 앞당겨 달라고 요청했지만 부기가 빠져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잠자는 시간 빼놓고 얼음을 계속 대고 있어 부기가 빨리 빠졌다”며 “(손흥민이) 월드컵 경기를 너무 나가고 싶어 했다. 축구선수들은 왼쪽 가슴에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지 않나. 저도 흥민이한테 (월드컵은) 영광스러운 자리고, 국민들이 기대하고, 팬들이 원하는 거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손 감독은 “토트넘에서 이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연봉을 떠나 네가 살아보고 싶은 도시, 공 차보고 싶었던 구단 가서 행복하게 공 차다가 은퇴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라며 “그 또한 결정은 흥민이가 할 것이다. 늘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흥민이가 은퇴할 때쯤에는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며 “네 꿈도 이루고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뤄서 너에게 고맙다. 자식이지만 고맙다”고 진심을 꺼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