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동통신사와 플랫폼 사업자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망 중립성’ 원칙을 법제화하려는 채비에 나섰다. 이동통신 업계에선 망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이 한창인 상황에서 망 중립성을 법적 개념으로 규정하면 입지가 좁아질 수 있어 난감해 한다. 망 사용료 갈등에서도 이동통신사에 불리할 수 있어 망 중립성 법제화는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업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내년 발의를 목표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과기부는 지난 7월 전문가 포럼을 꾸리고 검토에 들어갔다. 지난달에는 공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 측은 현행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법률로 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동통신 사업자가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을 법률에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2012년부터 망 중립성 원칙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망 중립성이 법적 개념으로 높아지면 분쟁의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다. 망 중립성 위반·분쟁이 발생하면, 실효성 있는 집행·조정이 가능한 법률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동통신 업계에선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동통신사들은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지닌 빅테크 기업들이 망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무임승차’해 손해가 크다고 주장한다. 망 사용료를 둘러싸고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는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망 중립성을 법적 개념으로 끌어올리면, 이동통신사들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 간 비용 갈등이 망 중립성이라는 법적 개념을 둘러싼 갈등으로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이동통신 기술을 내놓을 때 망 중립성이 ‘문턱’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기부는 지난 2020년에 메타버스, 자율주행 등의 기술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융합서비스를 망 중립성 의무에서 예외로 인정했다. 뒤늦게 망 중립성을 법제화할 경우 예외 범위를 다시 정해야 하는 등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발생한다. 과기부는 초안인 만큼 이해관계자들과의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회에서 ‘망 사용료 의무 부과’의 법제화 움직임은 멈춰섰다.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국회 파행으로 연내 처리도 멀어지는 분위기다. 여야 의원들은 현재까지 7개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인터넷망을 이용할 경우 사용료에 대한 논의를 의무화하는 게 핵심이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