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이듬해 토니상 10관왕을 차지한 뮤지컬 ‘물랑루즈!’는 바즈 루어만 감독의 2001년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했다. 1890년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클럽 물랑루즈 최고의 스타 사틴과 젊은 작곡가 크리스티안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영국 호주 독일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2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개막한다.
“영화 ‘물랑루즈’를 너무 좋아해서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지자마자 보러 갔었어요. 한국에서 공연하면 반드시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오디션 공지가 뜨자마자 서류를 냈는데, 제가 전체 지원자 중 1번이더라고요. 그만큼 간절해서인지 오디션에 합격했을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김지우)
“해외의 대형 뮤지컬이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될 때 배우들 사이에선 ‘누가 캐스팅에 내정됐다더라’ 등등의 소문이 나곤 해요. ‘물랑루즈’ 역시 그런 소문이 나서 오디션 공지가 뜬 후에도 서류를 내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용기를 내서 오디션을 지원한 끝에 행운이 결국 제게 왔어요. 기적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아이비)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뮤지컬배우 김지우(39)와 아이비(40)의 표정은 한층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겨울 최고의 기대작인 CJ ENM 제작 ‘물랑루즈’의 여주인공 사틴 역으로 개막을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배우는 지난해 11월부터 1년여간 오디션과 연습 과정을 거치며 이번 공연을 준비해 왔다. 개막까지 얼마 넘지 않은 ‘물랑루즈!’는 현재 공연장에서 테크니컬 리허설(조명·무대전환·특수효과 등 무대 기술을 확인하는 리허설)을 매일 12시간씩 반복하며 만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두 배우는 “물랑루즈’의 사틴 역은 육체적으로도 힘이 많이 들 뿐만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역할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관객과 만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원작 영화에서 사틴은 니콜 키드만이 맡아 아름다움을 뽐낸 바 있다. 다만 영화 속 사틴이 순수함을 가지고 스타가 되기 위해 애쓴다면 뮤지컬에선 재정적 위기에 처한 물랑루즈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부각된다. 또 사틴과 크리스티안(홍광호 이충주), 몬로스 공작(손준호 이창용)과의 삼각관계는 영화보다 훨씬 긴장감 있게 표현된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물랑루즈’를 처음 봤을 때 사틴이 영화 속 모습이랑 상당히 달라서 놀랐어요. 뮤지컬 속 사틴은 더 주체적이고 강인해요. 산전수전 다 겪고 최고 스타가 된 만큼 순수하지 않은 게 맞는 거 같아요.”(김지우)
“영화에선 누가 봐도 사틴이 크리스티안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지만, 뮤지컬에선 몬로스 공작도 충분히 섹시하고 매력적입니다.”(아이비)
브로드웨이 개막 당시 사전 제작비만 2800만 달러(395억 원)에 달할 정도로 ‘물랑루즈!’의 무대는 볼거리의 향연이다. 작품의 첫 장면부터 화려한 무대세트, 의상, 조명 등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사틴의 경우 총 16벌의 의상을 입는데, 두 사람은 의상 피팅을 위해 직접 호주에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라이선스 뮤지컬을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은 처음이에요. 의상과 조명 모두 눈이 부실 정도니까요. 공연을 보자마자 제작비가 정말 많이 투입된 ‘자본주의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드실 거에요.”(아이비)
“사틴이 입는 총 16벌의 의상을 만든 디자이너가 모두 달라요. 코르셋을 입는 만큼 속옷 사이즈까지 디테일하게 재서 의상을 만들었는데, 정말 정교해요. 하지만 이 작품은 볼거리만이 아니라 공감 가는 드라마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김지우)
뮤지컬 ‘물랑루즈’는 원작영화에 쓰인 곡을 비롯해 마돈나, 비욘세, 아델, 리한나 등이 부른 히트 팝 70여 곡을 ‘매시업’(mash-up·여러 곡에서 일부 소절을 따온 후 하나로 엮어 넘버를 완성)한 것이 독특하다. 1막 피날레 넘버인 ‘엘리펀트 러브 메들리’에는 무려 21곡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도 있지만 매시업이 잘 돼 있고 번역도 매끄러워 팝송을 잘 모르더라고 공연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우와 아이비는 연예인 출신 뮤지컬배우라는 공통점이 있다. 탤런트로 활동하는 김지우는 2005년 소극장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로, 가수 출신 아이비는 2010년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로 각각 무대에 데뷔했다. 두 사람이 같은 뮤지컬에 캐스팅된 것은 2018년 뮤지컬 ‘시카고’ 록시 하트 역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두 사람은 “무대는 배우와 스태프 등 같은 팀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호흡을 맞추며 만들어가는 재미가 크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꾸준히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며 뮤지컬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