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담 채취 금지했지만… ‘사육 곰’ 관리엔 소홀

입력 2022-12-10 00:02
지난해 5월 울산시 울주군의 한 농장에서 탈출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포획당한 사육 곰. 이 곰은 약 1년 6개월이 지난 올해 12월 8일 농장주 A씨를 습격했다. 울산소방본부 제공

울산시 울주군에서 8일 곰 사육 농장을 경영하는 60대 부부가 탈출한 반달가슴곰의 습격을 받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농장은 불법 증식 건으로 여러 차례 고발 조치를 당했으나 사육을 이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 증식된 사육 곰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의 한 곰 사육농장에서 곰 3마리가 탈출한 가운데 사살된 곰이 쓰러져 있다. 울주군청 제공

불법 증식, 임대한 곰… 주인 습격
지난 8일 울주군 범서읍 한 농장에서 농장주 A씨 부부를 습격해 사살된 곰 세 마리는 경기도 용인시 곰 사육 농장에서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으로 확인됐다. 이 곰들은 웅담 채취 등을 목적으로 정부에 미신고 상태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환경부가 공식적으로 파악한 곰 사육 농가는 현재 22곳, 사육 곰은 319마리다. 환경부는 A씨 농가가 이 통계에 포함돼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환경부 허가 없이 민간에서 곰을 증식시키는 행위는 불법이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는 곰을 수출·수입하거나 증식, 양도·양수하는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망사고가 일어난 농가는 사육 곰을 관리하는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야생생물법 위반 혐의로 2019년 7월·2020년 7월·2021년 10월 세 차례 고발당했다. 울주경찰서 관계자는 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해당 농가는 불법 증식 문제로 이미 여러 차례 고발됐고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며 “지난해에도 곰 탈출 사건이 있어 출동한 소방관들에게 포획된 바 있다”고 말했다.

‘애물단지’된 사육 곰, 지자체 방임에 뜬 장 생활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국내 사육 곰은 1981~85년 농가 소득증대 목적으로 수입된 뒤 40년 이상 사육 과정에서의 연례적 불법 증식과 웅담 채취 등 학대문제로 사회적 논란이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육환경은 낡아졌고 곰 사육에 따른 수익도 줄었다. 그 과정에서 사육 곰이 농장주들에게 ‘애물단지’가 됐다는 게 환경·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용환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과거엔 살아 있는 곰의 웅담을 여러 번 채취할 수 있었고 수요도 있어서 수익성이 높았지만, 이젠 살아있는 곰의 웅담 채취와 번식 등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사회적 인식도 바뀌었다”며 “농장주들은 초기 투자 비용이 있으니 처리도 못 하고 비용투자도 하지 않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A씨의 사육 곰 세 마리 역시 이른바 ‘뜬 장’(공중 설치 사육장)에서 음식물 쓰레기와 개 사료를 먹는 열악한 환경에서 길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오후 곰 3마리가 탈출한 울산시 울주군 곰 사육농장. 울주군청 제공

동물보호단체들의 요구가 계속되자 환경부는 올해 1월 특별법을 통해 웅담 채취를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2026년 1월 1일 이후 곰 사육 또는 웅담 채취를 하다 적발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긴다고 정해놨다. 기존 사육 농가에 대해서는 2025년까지 유예기간을 줬다.

하지만 그간 불법 증식된 곰들에 대한 실태 파악이나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농장에서 상업성이 떨어진 곰을 버려두다 보니 매년 탈주 사고가 반복된다”며 “이번에 사살된 곰만 하더라도 민간에서 기를 수 있는 곰이 아니다. 예산을 투입해 불법 증식되는 곰들을 몰수, 관리해야 하지만 정부 차원의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불법 증식된 곰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곰 농장이 알아서 도태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몰수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물보호법을 보면 지자체장은 유실·유기 동물이나 피학대 동물 중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동물, 소유자로부터 학대받아 적정하게 치료·보호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동물은 구조해 보호조치를 할 수 있다.

정부는 전남 구례군에 야외 방사장, 사육장, 의료시설 등을 갖춘 반달가슴곰 보호시설(생츄어리)을 건립하고 있다. 2024년 상반기 중으로 완공을 끝낼 계획이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 처장은 “불법 증식된 사육 곰들을 몰수해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당장 마련해야 한다. (생츄어리 건립 전에) 동물원 등에라도 임시 보호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팀장은 “이번 습격 사건으로 적절한 시설과 인력을 갖추지 못한 민간에서 곰 같은 대형포유류를 사육할 수 없다는 게 확인됐다”며 “생츄어리 건립과 별개로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사육 곰 산업을 정리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 5월 발의돼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처리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국제 멸종위기종인 곰의 사육을 금지해 곰을 인도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누구든지 곰의 부산물 채취 등을 목적으로 사육, 증식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달 22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청원은 이날까지 1만580여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