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후 상대방이 “싫지 않았다”고 말했더라고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였다면 합의된 성관계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진성철)는 전날 준강간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 3년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1월 경북 구미의 한 공원 여자 화장실에서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자 초등학교 후배 B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피해자 B씨가 심신상실인 상태에서 A씨에게 강간당하고 상해를 입었다고 판단해 그를 기소했다.
1심은 “B씨가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로 술에 만취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성관계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블랙아웃 증상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의 결정적 근거로 제시된 건 성폭행 직후 A씨가 녹취한 파일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 녹음 파일에는 “싫었냐”는 A씨 물음에 B씨가 아니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대답한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준강간 혐의가 있다고 봤다. 준강간은 심신상실 또는 항거 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하는 범죄를 말한다. 2심은 “대화 당시 피해자가 술에 만취한 상태였고 피해자는 ‘아니’라는 대답 후 대화 도중 부정적 감정 표현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A씨와 성관계를 사전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설령 성관계 후에 ‘싫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해서 사전 동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다만 “그러나 A씨가 벌금형 1회 외에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도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