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돌본 장애딸 살해 母 법정서 “난 나쁜 엄마” 오열

입력 2022-12-08 17:49
30여년간 돌보던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60대 A씨가 지난 9월 25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30년간 돌본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60대 친모에게 검찰이 중형을 구형했다. 이 친모는 법정에서 “같이 갔어야 했는데, 혼자 살아남아 정말 미안하다. 나쁜 엄마가 맞다”고 오열했다.

검찰은 8일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류경진)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살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A씨(63·여)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A씨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을 통해 “피고인은 일관되게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하면서 가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죄는 명백하지만 38년간 의사소통도 전혀 되지 않는 딸의 대소변을 받아 가며 돌본 점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원인은 뇌 병변 장애가 아니다”라며 “피고인은 딸이 말기 대장암 진단을 받고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봤고, 그 고통을 없애주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했다”고 항변했다.

이어 “피고인은 당시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홀로 피해자를 돌보다가 육체·정신적으로 극한에 몰린 상황이었다”며 “일평생을 온 마음 다해 피해자에게 바친 피고인은 이제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속죄하며 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눈물을 흘리며 “당시 제가 버틸 힘이 없었다. ‘내가 죽으면 딸은 누가 돌보나.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법정에는 A씨 아들이자 피해자의 남동생이 증인으로 나와 평소 누나의 건강 상태와 어머니의 양육 방식 등을 증언했다.

A씨 아들은 “엄마는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누나한테서 대소변 냄새가 날까 봐 매일 깨끗하게 닦아줬고 다른 엄마들처럼 옷도 이쁘게 입혀주면서 키웠다”며 “엄마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던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나가 암 진단을 받고 엄마가 많이 힘들어했다. 살이 너무 빠져서 다른 사람 같았다”고 떠올렸다.

A씨 아들은 울먹이며 “우발적인 범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엄마를 모시고 살면서 지금까지 고생하며 망가진 엄마의 몸을 치료해 드리고 싶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A씨는 지난 5월 23일 오후 4시30분쯤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에서 수면제를 먹여 30대 딸 B씨를 살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뇌 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던 딸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앓았으며 사건 발생 몇 개월 전에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A씨는 범행 후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6시간 뒤 아파트를 찾아온 아들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그는 생계를 위해 타지역을 돌며 일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서 38년간 딸을 돌봤던 것으로 조사됐다. 아들이 결혼해 출가하면서부터는 홀로 B씨를 챙겼으며, 위탁시설에 딸을 보낼만한 경제적 여력은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직후 경찰이 A씨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진술해 구속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