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이혼 소송을 시작한 지 5년여만에 법적으로도 이혼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로 1억원, 재산분할 몫으로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국내 재벌가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중 알려진 사례로는 역대 최대 규모지만, 당초 노 관장이 청구했던 1조원대 재산분할 액수에는 크게 못 미친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부(재판장 김현정)는 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쌍방 제기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받아들여 “두 사람은 이혼한다”고 판결했다.
최 회장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인 노 관장과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그는 2015년 혼외 자녀의 존재를 알리며 노 관장과의 이혼 의사를 밝혔다. 이후 2017년 7월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지만 합의하지 못했고, 이듬해 7월부터 이혼 소송 절차에 돌입했다.
‘가정을 지키겠다’며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입장을 바꿔 이혼과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노 관장이 요구한 재산분할 금액의 상당수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그룹 지주사 SK㈜ 주식 중 648만여주였다. 최 회장 보유 지분의 절반 수준으로 6일 종가 기준 1조3586억원에 달한다. 노 관장은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 회장이 주식을 처분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도 신청했고, 지난 4월 일부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최 회장이 최초 제기했던 이혼 소송은 기각하면서도, “노 관장이 SK㈜ 주식 형성과 유지·가치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665억원만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했다. 이날 종가 기준 약 31만주로 노 관장이 당초 요구했던 지분의 4.8%(전체 주식의 약 0.43%) 수준이다. 최 회장을 유책 배우자로는 판단했으나, “SK㈜ 주식은 최 회장이 부친인 고(故) 최종현 전 회장에게 증여·상속받은 SK 계열사 지분에서 기원한 ‘특유재산’”이라는 최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특유재산은 부부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배우자 기여 없이 본인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뜻한다. 원칙적으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다. 반면 노 관장 측은 결혼 기간이 오래된 부부일 경우 증여·상속받은 재산도 공동재산으로 봐야한다고 맞서왔다. 34년 간의 법적 결혼 생활 동안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 등을 도맡아 재산 유지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요구한 SK㈜ 주식은 특유재산으로 판단하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최 회장이 보유한 (또다른) 일부 계열사 주식, 부동산, 퇴직금, 예금 등만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산분할금 665억원은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할 것을 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은 한 해 배당금만 수백억원을 받기 때문에 현금 동원력은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김준엽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