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지킨 태극전사 6명, 마음은 함께 뛰었다

입력 2022-12-06 11:54 수정 2022-12-07 17:21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과 경기를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의 조현우 골키퍼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한국의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을 이끈 태극전사였다. 백업 요원에 머물렀던 조현우, 송범근, 김태환, 윤종규, 송민규와 최종명단 26명에 들진 않았어도 예비자원으로 함께 카타르행 비행기를 탄 오현규가 그들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6일 새벽 카타르 도하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월드컵 16강전에서 전반에만 4골을 허용하며 1대 4로 패했다. 16강 탈락과 함께 카타르월드컵에서의 여정도 마무리됐다. 대표팀 선수들은 이날 하루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날 귀국한다.

대표팀이 탈락하면서 26명의 선수 중 5명은 단 1분도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 채 돌아오게 됐다. 이들은 파울루 벤투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팀 동료들과 전술 훈련을 함께하며 주전들의 훈련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각 포지션 경쟁자들에게 끊임없이 긴장감을 심어주며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에 공헌한 셈이다.

2022 카타르월드컵 대표팀 조현우가 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손흥민의 팔을 잡고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골키퍼 조현우와 송범근의 결장은 예견된 결과였다. 다른 경쟁자들이 있어도 결정적인 실수를 하거나 부상 우려가 있지 않다면 한 대회에서 여러 골키퍼를 출전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 전술적인 방향을 잡은 상황에서 한번 실전 감각을 이어간 골키퍼를 곧바로 다음 경기에 교체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처음 치른 대회인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때와 마찬가지로 김승규가 홀로 완주했다.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른쪽 우측 풀백 자리는 김문환이 독식했다. 김문환은 지난 조별리그 3번의 경기에 이어 브라질전에서도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맏형으로 이번 대표팀에 합류했던 33세 김태환은 끝내 월드컵 본선 무대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소속팀으로 돌아간다. 내년 1월 육군훈련소 입영 뒤 김천상무프로축구단 합류가 예정된 윤종규 역시 마찬가지다.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한국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송민규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오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오후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전방 스트라이커 요원 송민규도 첫 월드컵을 벤치에서 지켜봤다. 그는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3 옵션’으로 평가됐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황의조가 선발 기용됐고, 이후 펼쳐진 3연전에서는 조규성이 출격했다.

최종 명단에서 탈락한 2001년생 대표팀 막내 오현규도 선수들과 함께했다. 벤투 감독은 첫 대회 시작 전 심각한 부상이나 질병으로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오현규를 27번째 선수로 카타르에 데려왔다.

출전 선수 중 가장 적게 뛴 이는 조유민이다. 그의 유일한 출전 경기는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이었는데, 정규시간 종료 직전인 후반 45분 투입돼 추가시간 10분여 동안 활약했다

비록 실전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지만 백업 요원들은 경기가 끝난 후 너나 할 것 없이 뜨거운 동지애를 과시했다. 포르투갈을 2대 1로 꺾고 잠시 뒤 우루과이가 가나를 2대 0으로 이기면서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기쁨의 눈물을 함께 흘렸다. 패한 경기에서 아쉬움을 삼키는 동료를 위로해줬던 이들도 백업 선수들이었다.

한국 축구대표팀 김태환(왼쪽부터), 이강인, 손준호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회복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업 골키퍼로 두 번째 월드컵을 완주한 조현우는 브라질전이 끝난 뒤 인스타그램에 자신을 포함한 3명의 골키퍼 유니폼 사진을 게시했다. 그는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달렸기 때문에 16강 진출을 했다”며 “지금 이 순간 다시 시작이라 생각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선수들에게 끊임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신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