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청 공무원들이 산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서 고압 전선 단락으로 불이 난 현장을 보고도 외면했다. 자칫 산불로 이어질까 우려해 간이소화기로 초기 진화에 힘쓴 이는 지나가던 관광객이었다.
지난 9월 27일 낮 1시30분쯤 충북 영동군 법화농공단지 인근 도로에서 화재가 났다. 고압 전선 단락으로 도로변에 불이 나 허연 연기가 솟구쳤던 것이다. 여러 차량이 그냥 지나쳤지만 지나가던 관광객 A씨는 걱정이 돼 차에서 내려 진화에 나섰다. 단락된 전선의 피복된 부분에 불이 붙어 주변으로 옮겨붙던 상황이었다.
A씨는 간이소화기로 1차 진압에 나선 뒤 불이 산으로 타고 올라가는 지점에 흙을 뿌리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하지만 전선에 붙은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때마침 영동군청 소속 공무수행 차량이 이 도로를 지나갔다. A씨는 차량을 멈춰 세우고 상황을 설명한 뒤 “간이소화기가 있느냐”며 도움을 요청했다. 민방위복을 입은 군청 지방직 공무원 3명이 타고 있었으나 이들은 “간이소화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만 남긴 채 예정된 출장 업무를 하러 이동했다.
A씨는 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민간인도 산불로 번질까 우려해 초동 조치에 나섰는데 군청 공무원이 상황을 목격하고도 그대로 지나쳤다”며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최소한의 조치를 한다든지, 경찰이나 소방이 올 때까지 상황을 주시해야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A씨와 동승자는 화재를 본 뒤 경찰과 소방에 신고를 하고 1차 진압에 나섰다고 한다. A씨는 “함께 타고 있던 동승자가 흙을 뿌리던 중 고압 전선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며 당시 위험했던 상황을 전했다.
영동군청은 자세한 경위를 파악한 뒤 해당 공무원들에게 신분상 처분인 ‘주의’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군청 감사팀 관계자는 “부적절한 대응이었던 게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규모가 크지 않고 불길도 약해 해당 공무원들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신고가 접수돼 소방 인력이 출동하고 있음을 고려했다고 해명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