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세 김형석 교수 “그 많은 고생도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입력 2022-12-02 15:32 수정 2022-12-02 16:03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가 2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출간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당신은 행복했습니까? 누가 그렇게 물어보면, 하여튼 행복했다, 그렇게 말한다. 고생을 많이 했는데 행복했다.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을 만들었고, 내 인생을 만들었다. 그게 내 결론이다.”

올해 103세를 지나는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살아온 인생이 행복했다며 자주 웃음을 지었다. 2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출간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점심식사를 포함해 2시간 넘게 이어진 행사를 너끈히 소화하며 행복론을 설파했다.

김 교수는 “사랑이 있는 고생”이란 말에 대해 “나를 위한 고생이 아니고 남을 위한 고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에 동참해서 그 짐을 조금이라도 내가 대신 짊어질 수 있으면 그것은 고생이 아니고 가장 보람 있는 행복이 된다”며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아마 인생에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이전에 출간된 김 교수의 에세이집들 속에서 행복을 주제로 한 글들을 모아서 엮어낸 것이다. 김 교수는 새로 쓴 서문에서 “그 많은 고생도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며 “‘사랑이 있는 고생’이 없었다면 내 인생도 무의미하게 사라졌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시냐?’는 질문을 받고 김 교수는 “젊을 때는 즐거움이 행복이다. 50대나 60대에는 성공이 행복이다. 그런데 70대쯤 넘어가면 보람있게 살았는가가 행복이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철학교수로, 수필가로, 기독교 사상가로 살아오면서 사람들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도 책 두 권을 더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간지 두 곳에 쓰고 있는 칼럼도 사람들이 읽어주는 한 계속 써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내년도 강연 요청도 받고 있다.

그는 “100살이 넘으니까 건강 때문에 편안한 시간은 별로 없다. 그래도 일이 남아있으니까 그 일은 끝내야겠다, 그런 생각이다”라며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사는 게 좋을까.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건강 비결을 묻는 질문에 “무리하지 않으면서 일을 계속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70대 중반이 넘으면, 몸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건강하다”며 “몸이 (건강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정신이 지탱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김 교수는 1920년대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난 실향민이다. 1947년 월남해 1954년부터 31년간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근무했다. 1960∼80년대 ‘고독이란 병’ 등 철학적 주제들을 문학적으로 다룬 다수의 수필집을 써서 당시 젊은이들의 지적·정신적 갈증을 채워줬다. 100세가 넘어서도 칼럼, 강연, 방송, 저술 등을 계속하고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