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풀리지 않는 ‘기동대 요청’ 미스테리

입력 2022-11-26 06:00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용산경찰서와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 사이에 ‘경비기동대 요청’을 두고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25일 “이임재 전 용산서장의 진술 외에 경비기동대 요청 지시를 하였다고 볼 만한 객관적 자료나 관련자들의 진술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이 전 서장의 지시가 있었는지를 두고 용산서 내 직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 전 서장은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서울청에 경비기동대를 요청했으나 집회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광호 서울청장은 지난 21일 “핼러윈과 관련해 용산경찰서에서 경비기동대를 요청받은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수본은 “결국 서울청에 요청했느냐가 중요하다. 최종적으로 지시를 받은 사람이 없다”며 “지시했는지 여부는 수사기관 입장에서 핵심적인 진술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전 서장의 지시를 두고 진술이 엇갈려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취지다.

용산서가 사전에 서울청에 경비기동대를 요청했는지 여부는 법적 책임을 따지는데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상급기관인 서울청의 ‘책임’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폭발력이 큰 사안으로 평가된다. 특히 야당은 참사 당일 용산 대통령실 주변의 집회·시위를 막느라 경비기동대가 투입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정부·여당은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서울청과도 상관없는 용산서 차원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이임재 전 용산서장,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발언> (지난 16일)

"제가 정확한 날짜까지는 지금 기억을 하기는 힘드나 제가 주무부서에 이번에 핼러윈축제에 대비해서 가장 효율적인, 인파 관리에 가장 효율적인 기동대를 지원 요청해라 그런 지시를 했었고 그래서 주무부서에서 서울청 주무부서에 지원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주무부서에서 다시 또 경력 운용 주무부서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당일 집회·시위가 많기 때문에 지원이 어렵다는 그런 답변이 들어왔었습니다. 그래서 저 후에 다시 경력 부대 지원에 대해서 서울청에서 재차 검토가 있었으나 그때도 다시 집회·시위 때문에 어려운 것으로 다시 결정이 된 것으로 그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기자간담회 서면 답변 자료> (지난 21일)

"서울청 112상황실과 경비과에 재차확인한 바 핼러윈과 관련해 용산경찰서에서 경비기동대를 요청받은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핼러윈 현장에 경비기동대 배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사고를 사전에 예견하거나 당시에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집회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기동대 비치 대신에 형사인력 증원 배치를 수사부장과 형사과장에게 지시한 바 있다."

특수본 “용산서장 진술 뒷받침할 증거 없다”

기동대 투입과 관련한 협의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는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의 진술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사실상 이 전 서장의 진술이 허위에 가깝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서장은 두 차례에 걸친 특수본의 소환 조사에서도 지난 16일 국회에서의 발언과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전 서장의 기동대 투입 지시를 두고 용산서 내 직원들의 진술이 일부 엇갈리고 있다. 특수본에 따르면 일부는 “회의 때 그런 지시가 있었다”고 기억하는 반면, “그런 지시가 없었다”는 진술도 많았다고 한다. 특수본은 관련 지시를 받았다고 지목된 용산서 간부 2명을 소환 조사했지만, 모두 “그런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 전 서장은 ‘지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지시를 받은 사람은 없는 상황이 됐다. ‘지시를 했다’는 이 전 서장도, ‘지시받은 적 없다’는 직원들도 모두 자신의 책임을 숨기기 위해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지시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서울청에 아무런 요청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게 현재까지 특수본의 판단이다.

용산서의 근거 : 보도자료에 적힌 “경찰기동대 배치”

용산경찰서는 핼러윈 데이를 앞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112‧형사‧여성청소년‧교통 등 관련 기능에 추가로 경찰기동대를 지원받아 총 200여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해 시민 안전과 질서유지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목을 두고 용산서 관계자는 “경비기동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었다. 다만 ‘경찰기동대’라는 표현 안에는 경비기동대와 교통기동대가 모두 포함된다.

또 실무 단계에서 서울청에 경비기동대 지원 여부를 알아봤다는 주장도 참사 직후부터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용산서 차원의 핼러윈 데이 대책 수립에 관여한 용산서 관계자는 지난 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주말 집회로 경비기동대 배치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해서 서울청에 실무적으로 ‘기동대가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의견을 드렸다”며 “이후에 어떻게 협의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교통기동대는 가능하다고 해서 보고서에 교통기동대 요청을 적었다”고 말했다. 경비기동대 필요성에 대해 서울청과 상의한 결과를 토대로 경비기동대가 아닌 교통기동대를 요청했다는 취지다.

서울청의 근거 : 공문에 적힌 "교통기동대 요청"

서울청 역시 용산서가 ‘교통기동대’를 요청한 보고서를 근거로 제시한다.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지난달 26일 용산서가 서울청에 제출한 ‘치안 상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용산서는 ‘교통기동대 1개 제대 지원요청’이라고 적었다. 공식적으로는 용산서 차원에서 경비기동대가 아닌 교통기동대만 지원 요청한 것이다.

서울청은 지난달 27일 김광호 서울청장 주재로 핼러윈 데이 대응 방안도 논의했다. 김 청장은 지난 7일 국회에 출석해 “당시 경비부장한테 전화를 해서 혹시 기동대 병력이 여유가 있느냐고 물으니 주말 집회가 있어서 좀 힘들겠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며 “아무래도 좀 부족한 것 같아서 형사들을 대거 동원해서 배치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용산서의 요청은 없었지만, 김 청장이 선제적으로 판단해 경비기동대 투입 여부를 검토했었다는 취지다.

누군가의 '허위 진술' 또는 '오해'

현재까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용산서에서 공식적인 루트로 서울청과 경비기동대 투입을 요청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비기동대를 요청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능인 용산서 경비과에서 의견을 개진해야 했는데, 용산서 경비과는 내부 회의에서도 경비기동대 지원 요청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핼러윈 데이 2주 전에 열린 지구촌 축제 때도 용산서에서 서울청에 경비기동대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용산서 차원의 핼러윈 데이 대책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는 경비기동대 요청 여부를 두고 “‘지구촌 축제 때도 안됐는데 이번에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핼러윈 데이 주무부서였던 용산서 112상황실에서 용산서 경비과의 협조를 받지 못한 채 우회로를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용산서가 지원받은 교통기동대는 경찰관 기동대 내에 ‘교통 활동 전문’으로 지정된 부대를 말한다. 일반 경비기동대와 달리 경비과가 아닌 교통과에서 직접 운영한다. 경비기동대 지원 요청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대로 차선책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용산서 112상황실이 서울청에 교통기동대를 공식 요청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정확히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용산서에서 교통기동대 지원을 두고 서울청과 사전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경비기동대’와 관련된 언급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특히 인력 지원 요청과 관련해서는 사전에 상황을 미리 알아본 뒤 공문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용산서 내부에서 ‘어렵겠다’는 경비과의 입장이 서울청의 입장으로 와전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특수본은 용산서와 서울청 관계자들을 상대로 기동대 지원 협의 과정을 포함한 사전 안전대책 수립 부분을 계속 확인하고 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